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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대훈 Apr 08. 2024

146

4.8

혈란 


계란 한 알을 쪼개 프라이팬에 떨어트렸더니 

하얀 알끈이 선홍빛 피로 물들어 있었다 

얼핏 작은 생물들이 꿈틀거리는 것도 같은 

가느다랗고 긴 그 끈을 나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니 본다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시야가 떨린다

그 핏줄은 내 생애를 뒤로 거슬러 

아무것도 없는 삼엄한 곳에 나를 내던져 놓았다 

이것은 어미의 설움인가 자식의 절규인가  

한 세계의 미묘한 모순이 팍 터져버린 것인가 

응축된 결함을 품어두고 있다가 낳은 것을  

끝내 책임지지 못하고 버려버린 생명의 속절없음인가 

꾸룩꾸룩 내장으로 신음하면서 나는 

미처 아물지 못하고 죽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흔적은 살을 떨게 한다 떨리는 살의 내부는 

공포보다는 슬픔이고 슬픔보다는 조바심이다 

사위에 비밀스러운 적요가 내려와 있었다 

은밀하고 치밀한 수명처럼

핏기가 흉터가 되고 흉터가 무늬가 되는 삶은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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