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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20. 2020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버지가 절 믿었던 것만큼 이젠 제가 아들을 믿어요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버지는 사업을 시작하시기 전 월급을 받는 봉급 생활자였다. 이렇게 월급을 받을 때만 해도 아버지는 아들인 나를 데리고 주말이면 시간을 가끔 보내곤 하셨다. 내 오랜 기억으로는 어릴 때 우리 집은 바다와 가까운 곳에 살았고, 아버지께서는 낚시를 좋아하셔서 휴일이면 자전거를 끌고 어린 나를 뒤에 태우고 방파제로 낚시를 다니시고는 하셨다.


 그래 봤자 여섯, 일곱 살 때였던 난 자전거 뒤 안장에 앉아 넓은 아버지 등에 착 달라붙어 고사리 같던 손으로 아버지 허리춤을 꼭 잡고 아버지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꼭 붙들고 앉아 있어도 어린 내가 늘 불안했었는지 아버진 한 손으로는 뒤에 타고 는 날 챙겼고, 가끔 내가 손을 놓고 졸고 있을 때면 이내 깜짝 놀라 나를 안아 매고 자전거를 끌고 가셨던 일도 종종 있었다고 했다.


 조용한 바다 방파제에 도착하면 아버지는 당신 옆에 날 꼭 붙여놓고 바닷가로 미끼를 끼운 낚싯대를 드리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당신의 이야기였는지 나에게 했던 이야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자주 었던 미소만큼은 자식을 향한 사랑의 눈빛이었고, 얼굴 가득 보였던 인자한 모습은 한 없이 컸던 부모의 마음 그것이었던 것 같다.

 

 월급을 받으시며 생활하시는 봉급 생활자였지만 사무실에 앉아 근무하시던 노동자가 아니었고,  배가 들어오면 어판장에 나가 잡은 물고기 출하, 경매 등의 업무가 아버지의 주요 업무셨다. 어선들이 물고기를 잡아서 들어오면 항구를 뛰어다니며 땀 흘리는 현장 일이 많아 아버지는 늘 적당히 보기 좋은 구릿빛의 피부를 유지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엔 낚시를 하시던 아버지를 볼 때면 그 구릿빛 팔과 얼굴 덕에 아버지가 꼭 바다에서 생업으로 조업하시는 어부라는 착각을 많이 했었다.


  이러셨던 아버지가 어느 날 사업을 시작하셨고, 사업을 시작하고서는 아버지와 주말을 보낼 일은 줄기 시작했다. 아니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이 거의 없을 만큼 아버지는 바쁘셨고, 시간을 내지 못하셨다. 그렇게 나의 사춘기는 조금씩 지나갔고,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아버지와의 대화 시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서로 얼굴을 마주할 일이 점점 줄어갔다. 그렇다고 그때엔 아버지가 무척 그립고, 예전처럼 아버지와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다만 예전 아버지의 그 미소가 가끔씩 생각날 때가 있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 난 고등학생이 되었고, 고등학교에 다니며 가끔씩은 부모님 속을 썩인 일이 종종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떤 사건으로 억울한 일이 생겼고, 그 일 때문에 괴로워하다 그 나이 때 입에 대지 말아야 할 음주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술을 사려면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는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그 당시에만 해도 부모님 술 심부름을 하는 어린 친구들이 많아서 마트에서 미성년자가 술을 사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 당시 친구 중 한 명이 술과 새우 과자를 사다 줬고, 처음 먹어보는 술이었지만 무슨 객기였는지 이기지도 못할 술을 병째 마시고 만취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정신을 깨어보니 이미 새벽이 되어있었고, 난 잠시 잠이 깨지 않은 상태로 현재 상황을 인지하느라 멍한 상태로 주변을 살폈다. 내가 잠이 들었던 곳은 그 당시 내가 다니던 독서실이었고, 내가 술이 취하자 친구는 아마 날 독서실에 눕혀 놓고 자신은 냉큼 집에 간 듯했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가 다 된 시간이었고, 난 그때까지 한 번도 독서실에서 자고 집에 간 적이 없어서 한마디로 '망했다'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 몰래 집에 들어가려면 그 순간 서둘러야 했고, 짐을 챙기고 서둘러 독서실을 나오던 난 그만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버렸다. 언제 와 계셨는지 아버지는 독서실 앞에서 날 기다리고 계셨고, 내 머릿속에서는 정말 '망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공부하다 잠이 들었나 보구나."

 "네.. 네에, 아버지"

 난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술냄새에 그만 깜짝 놀랐고, 아버지에게 들킬까 급하게 입을 닫아버렸다.

 "그래, 얼른 집에 가자. 학교 가야지."

 아버지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알 수 없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내게 집에 가자고 말씀하시고는 앞장을 서셨다.


 난 그 날 이후 이 사건으로 아버지에게 어떠한 추긍도, 야단도 듣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는 독서실에서는 잠을 자지 말고, 꼭 집에 와서 자라는 이야기만 하셨을 뿐 아버지는 더 이상의 당부는 하지 않으셨다.


 난 지금도 아버지가 그 당시 왜 그냥 넘어가셨을까 하는 의문은 있지만 어렴풋이 아버지의 마음을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이 많이 챙기지 못한 아들이지만 그때까지 큰 말썽 없이 잘 자라준 게 고마웠고, 많이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함이 컸을 테다. 아들을 믿는 만큼 이 날의 실수로, 그리고 아버지가 눈치를 챘음에도 아무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은 백 마디 말보다 내게는 더욱 큰 무언의 믿음을 보여주셨던  같다.

 

 나도 가끔 아들이 말썽을 부릴 때도 있고, 말을 안 들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날 믿었듯이 나 또한 내 아들을 믿는다. 내가 받고, 느꼈던 그 믿음과 사랑을 자식에게 베풀듯이 난 그때 아버지의 모습에서 또 한 번 성장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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