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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l 10. 2020

결혼반지 도난 사건

빈집 털이범에게 도둑맞은 우리들의 신혼 스토리

아내에게서 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



2002년의 봄 어느 날, 우린 결혼한 지 불과 7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한참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을 때였지만 결혼 후 유일하게 아내와 내가 맞벌이를 하며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날이 많았었던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난 그래 봤자 입사 2년밖에 되지 않은 신입 풋내기 시절이었고, 아내는 지방에서 쭈욱 직장 생활하다가 결혼하며 처음으로 이직하여 여성의류 회사의 영업부로 입사하였을 때였다. 당연히 일도 서툴 수밖에 없었고, 부모님 밑에서만 살다가 신랑 하나 믿고 서울로 상경해 정신없이 산지 고작 7개월이니 당연히 아내도 힘이 들었을 때다.


  난 그때 야근도 잦았고, 회식도 많았다. 최근 10년은 밖에서 술자리는 최대한 자제하고, 집돌이의 제1원칙인 칼퇴를 몸소 지키며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지내는 나이지만, 그때엔 야간에 작업하러 고객사 불려 다녀, 선배들과의 술자리도 불려 다녀, 보고서도 수시로 작성해야 하니 야근의 연속이었다.


  사건이 발생했던 날도 이틀 전 야간작업하느라 고생한 내게 선배와 사수가 수고했다고 맥주 한잔 하자는 제안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사무실 근처 맥주 가게에 앉아 한창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선배들이 하는 얘기를 놓치지 않고 들으려고 시끄러운 술집 분위기와 소음에 귀는 쫑긋, 언제든 리액션을 준비해 놓은 상태로 입에 맥주잔을 가져갈 때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놨던 전화기가 부리나케 울려댔고,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저녁시간 전화 특히 고객 전화일까 노심초사 마음 조리며 핸드폰(이 시절은 아마 발신 번호가 뜨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함)을 받았다.


 "여보세요, 김철수입니다."

 "오빠, 통화 가능해?"


  전화 온 건 아내였고, 미리 아내에게 저녁에 선배들과 맥주 한잔하고 간다고 얘기했던 터라 늦지 않은 시간에 아내가 전화한 것이 반갑지만, 의아했다. 아내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아 조금은 걱정스럽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봤다.


 "괜찮아, 영희 씨. 집에 무슨 일 있어?"

 "응. 오빠 미안한데 집에 지금 와봐야겠어."

 "지금? 무슨 일인데. 선배들하고 자리 잡고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먼저 간다고 하기가 눈치가 보여."


   잠시 침묵이 흘렀고,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난 지금까지 먹었던 술의 취기가 싸악 달아나는 기분이 들었고, 자연스레 엉덩이는 떨어져 금세 의자 위를 벗어나 있었다.  

 "오빠, 나 퇴근하고 지금 집에 왔는데, 우리 현관문이 열려있어. 혹시나 해서 열린 현관문 사이로 집안을 봤는데 안방 서랍이랑 옷장이 다 열려있는 것 같아. 어쩌지?"


   순간 나는 집에 도둑이 들었음을 깨달았다. 난 아내에게 집에 혼자 들어가지 말라는 말과 경찰서에 신고해놓고 밖에 나와있으라고 당부한 뒤 선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바로 갔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경찰들이 집에 들어와 조사 중이었고, 난 놀란 아내를 위로하고는 집안을 둘러봤다. 열 수 있는 랍은 모두 열려있었고, 정리해 놓은 옷가지며 서류 같은 것들이 어질러져 집안이 폭탄을 맞은 듯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조사 과정에서 없어진 물건들을 확인하고는 계획된 범행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조사했던 경찰들 또한 물건을 찾거나 범인을 잡을 거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도난당한 물건은 우리 부부의 결혼반지아내의 패물이었고, 우리 결혼으로 유일하게 남은 예물은 평소에 차고 다녔던 내 시계가 전부임을 알게 되어서 허탈한 마음까지 들었다. 경찰분 말로는 아마 맞벌이에 신혼이라는 걸 알고, 결혼 패물을 노리고 온 전문 도둑의 범행일 것이라고 했다.


  아내와 난 그나마 사람이 없었을 때 온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다만 남들처럼 많이는 아니어도 어머니가 갖고 계셨던 패물과 할머니께 받은 폐물들까지 긁어다가 아내에게 줬었는데 아내는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남김없이 털린 걸 아쉬워했다. 우린 이 패물을 나중에라도 필요할 때 쓰려고 아껴뒀었는데 그걸 모두 도둑맞아서 아쉽고, 안타까웠다. 28년을 시골에서만 살았던 아내에게는 서울 적응이 쉽지 않음을 알게 한 큰 대형 사건으로 두고두고 기억되고 있다.


  우리의 첫 번째 신혼집에 대한 추억은 이렇게 강렬하고, 아쉬움만 남겼지만 몇 년이 지나 들었던 얘기는 우리가 나간 뒤에 들어왔던 가족도 빈집털이를 당해 가전이며 집기가 없어졌다고 했다. 터가 안 좋은 건지, 입주한 사람들이 운이 없는 건지. 그래도 우린 아직까지 빈집이라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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