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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11. 2019

오빠, 내 옷 입고 튄 거야?

동생아, 난 그게 강타 옷인 줄 몰랐어

"엄마! 엄마! 오빠 어디 갔는데?"

"오빠 서울 갔지."

"아이! 아이씨, 오빠 내 옷 입고 튄 거야?"


나에겐 5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 어릴 때는 남동생이었으면 좀 더 함께 재미있게 놀 수 있었을 텐데 여동생이라 조금은 아쉬웠던 적도 있었다. 우리 남매는 누구 할 거 없이 40대이고,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면서 이젠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게 재미있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 첫 번째, 에피소드 ~


25년도 더 된 오래된 이야기다. 그 시절 동생은 HOT의 열렬한 팬이었다. 하긴 그 시절 중고등학생들 절반은 HOT, 나머지 절반은 젝스키스의 팬이었으니 선택일 뿐이지 당연한 거였다. 동생은 그 시절 HOT의 장갑, 가방, 옷 등등 소품이란 소품은 모두 수집하고, 모으며 구매했었다.

  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때고, 동생은 한창 사춘기 여고생이었다. 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시골집에 들렀었다. 집에 가면 동생이 곧잘 자기 옷자랑을 했고, 그땐 박시한 후드나 티셔츠가 많이 유행할 때였다. 마침 눈에 들어오는 옷이 있었고, 내가 입어도 작지 않을 크기인 박시한 빨간색 후드티였다. 그 당시 HOT 멤버들이 입고 방송에 출연했던 옷이라고 한다. 동생한테  한 번 입어봐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고, 옷을 입어봤다.

그때에는 나름 뽀얗던 얼굴 덕에 후드티 색깔도 잘 어울렸다.  동생에게 티셔츠가 잘 어울리냐고 물어봤더니 '얼굴이랑 색깔이 잘 맞는다'라고 해줬다.  그리 이야기하고는 빨리 벗으라고 해서 티셔츠를 벗어서 동생 방 옷걸이에 걸어놓고는 티셔츠 날 주면 안 되냐고 슬쩍 물어봤으나 자신이 최근에 구매한 '최애 아이템'이라고 도 없는 소리 말라는 통에 포기하고 말았다. 사실 별로 터울이 없는 누나나 여동생이 있었던 분들은 다들 이해하실 거다. 남자 형제들보다는 옷 고르는 눈썰미며, 센스는 여자 형제들이 더 좋았고, 항상 이런 누나, 여동생의 옷은 좋은 먹잇감으로 노려지기 마련이었다.

  그 날 저녁은 다행히(?)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 동생은 외출을 하고, 난 서울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방을 싸다가 거실에 있는 어머니에게 동생 후드 티셔츠가 마음에 드는데 나도 하나 사야겠다고 이야기했더니, 어머니는 동생에게 이야기할 테니 나보고 입고 가란다. 난 어머니의 말씀은 무지막지하게 잘 듣는 효자(?)였기 때문에 어머니의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빨간색 후드티를 입었고, 만족스러워하며 서울로 상경했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동생은 조금은 싸한 기분이 들었는지 집에 오자마자 자신의 붉은색 후드티를 찾아보았다고 했다.

다급한 마음이 들었던 동생은 얼른 후드티의 행방을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내가 사놓은 HOT 후드 티셔츠 어디 갔어?"   

"어 그거, 네 오빠가 오늘 입고 간 거 같은데?"

어머니는 크게 대수롭지 않게 답했고, 동생은 거의 포기한 낫 빛으로 어머니에게 확인차 나의 행방을 물었다.

"오빠 어디 갔는데?"

"오빠 서울 갔지." 

당연하다는 듯이 어머니는 내가 서울 갔다고 이야기했고, 동생은 울듯 말듯한 얼굴로 어머니를 잡아먹을 듯한 목소리로 한창 격앙되어 소리를 질러댔다. 이때 동생은 한창 사춘기 여고생이어서 무서울 게 없었다.

"아이! 아이씨, 오빠 내 옷 입고 튄 거야? 에이~ C"


그 날 이후로 그 빨간색 후드티는 내가 계속 입게 되었고, 동생은 아쉽게도 그 후로는 내게 옷 자랑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집에 갔다가 서울 올라가는 날이면 협박 아닌 협박도 한마디 보태면서.


~ 두 번째, 에피소드 ~


동생이 초등학생이고, 내가 중학생일 때의 이야기다. 옛날이야기할 때마다 동생이 오빠라는 존재가 꽤 괜찮은 사람이다 생각하는 몇 안 되는 훈훈한 미담 중 하나이다.

  중학교 때 우리 집은 연립주택의 3층에 살고 있었다. 우리 집 근처에는 동생의 '베프'가 살고 있었다. 시간 나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고, 틈나면 밖에서 동생 이름을 부르며 놀자고 이야기하곤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날은 동생이나, 나나 방학이 거의 끝날 때쯤이었고 동생은 방학숙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다.


"시우야~,  노올자~"


갑자기 밖에서 동생의 베프 주이가 동생의 이름을 불렀고, 동생은 창밖을 내다보고는 어찌할지 몰라했다.

마침 집에 있었던 나는 동생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봤고, 동생은 방학숙제 중에 일기를 아직 쓰지 못해 일기를 몰아서 쓰고 있는데, 주이가 놀자고 해서 숙제를 못하겠다는 거였다. 주이랑 놀고 싶은데 방학숙제인 일기가 한 달이나 밀려있었고, 놀자니 저녁에 엄마에게 혼날 거 같고, 그냥 숙제하자니 너무 놀고 싶어서 숙제가 손에 잡히지 않을 거 같다는 거였다.  

  난 아주 인자하고, 착한 오빠의 얼굴로 동생에게 내가 일기를 써줄 테니 놀다 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내가 이런 선행을 동생에게 베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는 정말 착한 오빠였나 보다. 동생의 증언이니 사실인 듯하다. 글을 읽는 분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따로 반전은 없었고, 난 동생의 일기 '무려 30일 치'를 깔끔하게 써줬다. 물론 글씨까지 신경 쓰며 예쁘게 쓰진 못했지만 동생은 나의 착한 오빠 코스프레 덕분에 친구와 재미있게 놀았단다. 사실 쓰다가 팔이 아파서 뒷부분부터는 꽤나 흘려 쓴 것 같은 기억이 나는 것 같긴 하다.

난 시간이 꽤 지나 그때 내가 해준 방학숙제 일기 때문에 선생님께 혼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동생은 딱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면서 그냥 넘어간 것 같다고 했다. 나와 동생은 5살 터울 치고는 꽤 잘 지낸 것 같다. 사이도 나쁘지 않았었고, 싸운 적도 거의 없었다.  

 우리 아이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도 남매이고, 4살 터울이다. 내 동생과 나와 비슷한 터울이지만, 우리 아이들은 종종 싸운다. 그것도 큰 아이가 둘째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다. 정말 보고 있으면 나보다 더 보수적일 때가 많다. 난 아이들에게 종종 '엄마, 아빠 없으면 피붙이는 세상에 너희 둘 밖에 없는 거야. 그러니 서로 아껴주며 잘 지내'라고 말하곤 한다. 두 아이도 서로에게 든든한 가족이고, 울타리이기를 바라면서.


  살면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추억들이 있다. 그 추억들 중에 가족과의 추억은 평생 보고 살 사이라서 그런지 만날 때마다 곱씹고, 되짚어내고 해서 좀처럼 잊히지가 않는다. 아니면 생색낼 일이 좀 더 생겨서 그럴지도...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12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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