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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l 27. 2020

예쁘면 얼굴값 한다는 옛말이 사실?

반짝이를 붙인 우리가 만든 허수아비가 입상을 했어요

2013년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인 초가을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서초구청에서 가족 봉사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허수아비 만들기 행사에 참여했었다. 조금은 찌푸린 날씨 덕에 날은 선선했고, 서초구청 광장에 돗자리를 깔고 우린 소풍 나온 기분으로 행사를 즐겼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이라 이런 행사가 있으면 종종 참석했고, 이날 행사의 주최가 마침 서초구청이라 근처에 사는 처제까지 출동해 우리의 허수아비 만들기를 지원 사격했다. 행사의 테마는 여주의 농가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보내는 행사였고, 우리는 허수아비 만들 재료를 하루 전날부터 철저하게 준비하여 그 날의 행사에 임했다.


  우리는 허수아비를 최대한 화려하고, 예쁘게 만들어 참새떼나 다른 새들로부터 1년 동안 어렵게 농사지은 벼들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하길 빌었다. 화려한 반짝이 원단에 커다란 눈망울과 새빨간 입술이 포인트인 우리의 허수아비는 딸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욱 빛내줄 만큼 아내와 아이의 손을 거쳐 화려하고, 예쁘게 만들어졌다.


  한 땀 한 땀까지는 아니지만 아내의 야무진 손과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이 어우러져 볼품없이 뼈대뿐이던 허수아비는 예쁜 모습으로 바뀌어 갔고, 우리의 바람대로 섹시와 귀여움을 동시에 담았다고 할 만큼 팜므파탈의 자태를 뽐내며 허수아비는 멋지게 완성이 되어갔다.


  멋지고, 아름다운 미모만큼이나 그 외모에 걸맞은 이름을 뭘로 지어야 할까 고민하다 내가 좋아했던 '원더걸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났고, 심사 과정에서 주최 측과 함께 봉사하시는 분들의 관심과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입상까지 하게 되었다. 대단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허수아비를 보낼 지역의 여주 쌀을 부상으로 받았고, 우리가 만든 원더걸스 허수아비는 서초구청에 남아  아름다움을 조금 더 뽐내다가 여주군에 기증된다고 했다.

  행사가 끝나고 다른 허수아비들은 차량에 태워줘 원래의 목적대로 여주군으로 이동했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다른 허수아비들과 함께 바로 논으로 봉사를 가야 했던 우리의 '원더걸스 허수아비'는 뛰어난 미모와 귀여움을 무기로 그 후로 한동안은 서초구청을 빛내며 전시되었다.


옛말에 예쁘면 얼굴값 한다더니





  누구나 태어난 이유가 있고, 만들어진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저마다의 의미가 있고, 쓰임이 있는데 그 의미와 쓰임을 찾지 못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재활용 원단으로 태어난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허수아비도 우리 가족과 같이 함께 만든 어떤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을, 서초구청에 전시된 허수아비를 보는 사람들에게는 잠깐의 미소를, 논에 세워져 허수아비로 열 일할 때는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어깨를 한결 가볍게 하는 귀한 조형물이다.


  모든 사람이나 물건은 그 쓰임이 있고, 그 쓰임에 적합하게 쓰이면 그 또한 고마울 따름이다. '왜 태어났을까?', '이걸 어디다 쓸까?' 같은 말은 이런 쓰임과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의 변명일 뿐이다. 주변에 이렇게 취급받는 사람이 있는지, 창고나 수납함에 쓸모없다고 방치되는 물건이 없는지 둘러보게 된다. 이런 의미 있는 시간을 예전에는 무의미한 시간으로 생각하고 방치했을지라도. 이젠 조금 더 신중하고, 소중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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