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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r 25. 2020

결혼식날 응급실행

나의 기막힌 웨딩 스토리

19년 전, 난 나의 결혼식 날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2001년 나는 아내와 결혼했다. 6년 가까이 연애를 했고, 길고 긴 연애 생활을 청산하며 결혼식을 치렀다. 아내와 나는 같은 지방 출신으로 장거리 연애를 했고, 양가 부모님이 모두 같은 지방에 계셔서 지방에 식장을 잡고, 결혼식을 올렸다.  여름의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햇살 따가운 초가을에 우린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했고, 나의 직장과 학교가 모두 서울이었던 관계로 서울 친구, 회사 동료들이 많이 참석했었다.


 인근에 공항이 없는 관계로 신혼여행도 다음날 오후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편이었던 터라 대학교 친구, 회사 선후배들은 아예 1박을 할 작정으로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많았다. 결혼식 당일 아침 긴장이 되어서 그런지 허기도 느껴지지 않아 아침을 대충 먹었고, 결혼식이 오후였음에도 식이 끝날 때까지 난 거의 빈속으로 식을 치렀다. 폐백까지 끝났더니 허기짐을 겨우 느꼈지만, 식사를 하기에는 친구, 동료들을 위해 따로 잡아놓은 피로연이 있어서 우선은 그리로 이동하여 식사를 하기로 아내와 상의했다.


 식장 앞에 준비해놓은 웨딩카를 타고 바닷가 인근에 횟집으로 갔더니 미리 이동해서 자리를 잡고 있던 친구들이 우리 부부의 결혼다시 한번  축하했고, 그제야 모든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내와 난 식사부터 하려고 우선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은 테이블로 옮겨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앞쪽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아내의 고향 친구들이 아내를 불렀고, 이내 앉으려던 자세를 고쳐 세우고 아내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난 그래도 아내와 가장 친했던 친구이고, 연애시절에 나와 아내의 연애 전선을 무척이나 응원했던 친구들이라 고마움을 표시도 할 겸 함께 아내의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로 이동했다.


 아내의 친구들은 붙여놓은 두 테이블에 8명이 모여 있었고, 아내와 함께 온 나를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하였다. 인사하고 화기애애하던 분위기에서 갑자기 아내 친구 중 한 명이 짓궂게 장난을 걸었고, 이제 서울로 함께 올라갈 아내를 친구들은 자주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난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철수 씨, 결혼 축하해요. 영희랑 행복하게 잘 사셔야 해요."

 "그럼요. 걱정 마세요. 은지 씨! 그리고 자주 올 테니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난 친구들의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잘 알기에 위로의 말을 건넸고, 진심으로 아내의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이렇게 영희 보내기가 너무 아쉬운데 친구들이 주는 벌주 한 잔씩은 받아야죠." 난 순간적으로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멈춰 섰고, 아내의 친구가 한 말이 빈말이 아님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내 무슨 객기였는지 시원하게 대답했고,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는 생각으로 생 잊지 못할 술잔을 받기 시작했다.


 첫 잔을 받아 들고, 시원하게 소주잔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 특유의 알싸함이 오히려 조금 정신을 번쩍 들게 했고, 이렇게 처음 3명(3잔)까지는 쉼 없이 목 밑으로 술을 넘겼고, 이렇게 시작은 괜찮은 듯했다. 하지만 이내 내 머리가 생각하는 속도보다 내 배속에서 공복임을 알리는 시계가 빨랐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친구들의 술잔은 계속 나를 겨냥하며 돌았다. 멈출 수가 없었고, 이렇게 연거푸 마신 술잔은 8잔을 넘었다.  갑자기 속이 거북해짐을 느꼈고,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오려고 일어나는 순간 머리가 띵해지고 아찔해짐을 느꼈다. 순간 나는 정신을 놓았고, 정신을 놓은 채로 긴 시간이 지났다.


 난 소독약 냄새에 눈을 떠보니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완전하게 정신을 차리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병원 응급실 침상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다. 주변에는 어머니가 계셨고, 시간을 물어보니 그렇게 쓰러진 지 6시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고, 아내를 찾으니 피로연에 서울에서 온 친구들 대접하느라 나 대신 남아있다고 했다.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고, 멀리서 온 나의 회사 동료들과 대학 친구들을 대접하느라 애써주는 게 너무 고마웠다. 다행히 1~2시간 더 누워있다가 난 응급실에서 나왔고, 아내도 친구들에게 최대한의 도리를 다 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나마 위로라고 할 수 있는 건 첫날밤을 병원에서 보내지는 않았다는 정도였다.

 19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정말 웃음밖에 나지 않지만, 그 날 만일 신혼여행을 가야 되는 날이었으면 정말 큰 일 치를 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도 등꼴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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