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터울의 여동생과 할 놀이는 아녔다

우린 부자는 아니지만, 사이는 좋은 것 같다

by 추억바라기

내게는 5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다. 어릴 적 동생과의 추억이 많지만 그런 추억들이 하나하나 쌓여 오랜 기억의 상자를 가끔 들여다보면 동생과 난 다른 기억의 느낌을 갖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 아마 내게는 당연했던 일이 동생에게는 감격의 순간이었던 일도 있고, 내겐 그냥 일상의 기억이 동생에게는 조금은 쓰린 추억이었던 일들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난 어릴 적 한 때 프로레슬링을 무척 좋아했다. 특별히 좋아했던 이유는 한참 재미있게 보던 애니메이션 중에 프로레슬링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 있었는데 난 그때 무척 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캐릭터를 좋아했었다. 지금은 추억의 애니메이션이 되었지만 80년대 초에는 컬러 TV 보급이 대중화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다양한 채널이나 프로그램이 없어서 TV에서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거의 학습적이었거나 너무 획일화된 내용이 많았었다. 그래서 그때엔 TV가 아닌 영화관에서 하는 만화 영화를 많이 좋아했었고, 주변에 VCR 재생기가 있는 유복한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와 친해지기 위해 많이 애썼었던 것 같다.


내 주변에도 이런 유복한 친구가 있어서 초등학교 때에는 그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었고, 놀러 가는 목적이 뻔했기 때문에 친구 집에 모이면 함께 간 친구들과 TV 앞에 모여 VCR로 재생하는 애니메이션을 자주 봤었다. 이렇게 본 VCR 중 특히나 내가 좋아했었던 애니메이션은 '타이거 마스크 2세"였고, 호랑이 가면을 쓴 주인공이 상대 악당 레슬러들과 싸우는 내용이었다.


난 친구 집에서 이렇게 타이거 마스크를 보고 온 날이면 5살 터울의 여동생을 꼬드겨 프로레슬링을 했고, 사이좋았던 우리 남매는 매번 형제끼리 할 격투 놀이를 성이 다른 남매간에 치고받고 노는 게 일상이었다. 방에는 커다란 이불을 여러 겹을 깔아놓고, 애니메이션에서 보고 온 레슬러의 기술을 동생에게 시전 하며 나의 레슬링 욕구를 하루하루 채워나갔다. 몸을 던져 없는 로프에 로프반동을 하지를 않나, 다리를 들어 프라잉 킥을 흉내 내지 않나, 내 몸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동생을 메치기 기술로 메치기를 하며 우린 그렇게 레슬링을 하며 놀았다. 아니 정확히는 나만 즐긴 것 같지만.


"동생아, 이번엔 드롭킥이다! 그건 로프 반동이잖아. 이쪽으로 다시 와야지."


여하튼 그때엔 이불을 여러 겹 깔고, 조심해서 기술을 썼다고는 해도 메치기 기술을 쓰거나 넘어트리면 꽤 아팠을 텐데 동생은 많이 울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매번 당하면서도 동생은 투덜대기는 했어도 레슬링을 안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오빠와의 놀이에 많이 동참했었던 착한 아이였다. 이렇게 어릴 적 레슬링 놀이는 다행스럽게도 그리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 동생과 예전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기억의 왜곡까지는 아니어도 동생과 다른 기억에 조금 놀랄 수밖에 없다. 내 기억에는 동생과의 레슬링 놀이에 대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동생의 기억에는 무척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많은 시간을 나와 이 레슬링 놀이를 한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서로가 함께 겪고, 경험한 일은 같은 사실로 존재하지만 꼭 같은 느낌의 기억으로 각자의 추억 속에 남아있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기억이라는 녀석이 오랜 추억이 될 때쯤에는 더욱더 기억은 희미해져 가고, 그때 가졌던 느낌만 짙어지는 것 같다. 누구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될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는 그냥 어린 날의 흔한 기억중 하나로 점점 옅어져 갈 수 있다. 반대로 누구에겐 시간이 지나며 잊힌 기억이 될 수도 있지만 함께 겪은 누구에게는 아픈 추억으로 오랫동안 남아있을 수 있다.


소통전문가인 김창옥 교수는 돈이 많으면 '부자'라고 하고, 잘 산다는 것은 '사이'가 좋다고 했다. 동생네 가족과 종종 만나 추억을 이야기할 때면 동생과 난 제법 잘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린 돈이 많아 부자는 아니지만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동생아, 그땐 로프 반동을 왜 그렇게 못 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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