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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n 07. 2021

월급을 포인트로? 우린 주식으로 줬는데

난감했었던 내 월급 이야기

직장인들에게 월급날은 한 달간 열심히 일한 응당 당연한 권리이며, 한 달 중 가장 주머니 사정이 두둑해지는 그래서 마음 가득 부자가 되는 하루이다. 그래서 월급날은 아주 특별한 하루이길 모든 직장인들은 원한다. 가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주 하지 않는 외식을 한다던가, 결혼 전 솔로들에게는 망설이던 구매욕을 충동질할 수 있는 그런 하루다.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신성한 날이면서, 당연히 받아야 할 축복 같은 날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급여일에 월급을 받는 걸 난 당연하게 생각했다. 회사를 다닌 지 당시 7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직원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회사의 매출과는 상관없이 당연히 지급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 8년 차였던 어느 날 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일을 겪었다. 당연히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급여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도 당황스러웠고, 준비가 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벌어진 일들이라 두려웠다.


당시 급여 지급 문제는 어떤 사전 예고도 없이 발생했다. 8년 차 직장인이 경험하기에는 흔한 일은 아니었고, 회사의 자금 상황을 알 수 있는 부서도 아니었기에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100여 명 이상의 직원이 재직 중인 소프트웨어 보안 회사였다. 벤처 붐은 많이 빠졌고, 시장은 좁았지만 동종업계에서는 두, 세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경쟁력 있는 회사였다. 일은 많았고, 회사는 누가 뭐래도 능동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회사가 어렵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고, 조금씩 들렸던 적자 소문 또한 심각한 수준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급여일 전날 오전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전체 메일이 왔고, 메일을 보낸 사람은 당시 부사장으로 계셨던 분이었다.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지만 난 당시 부사장님을 마음으로는 무척 존경했었다.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 대하는 태도가 무척 진중하셨고, 성품 또한 너무 인자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거 젊었을 때는 한 성격 하셨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내가 2년을 넘는 시간 동안 봐오면서 회사의 어떤 임원보다 어른 같은 분이셨다.


메일의 내용은 10분 뒤에 대회의실로 모이라는 공지였다. 메일 확인 후 집합의 의도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직원들은 궁금증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회의실에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회의실에 직원 대부분이 소집된 후에 메일을 보냈던 당사자인 부사장님이 들어왔다. 조용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빛 인사를 보낸 후에 그는 무겁게 입을 뗐다.

 

 "다들 요즘 바쁘죠? 일하느라 바쁘고, 힘들 텐데 이렇게 모이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어려운 얘기를 좀 꺼내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우리 회사가 직원들 급여를 제 날짜에 주지 못한 적은 있었어도 급여를 아예 못준 적은 없는데 이번에는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중략)..... 죄송합니다. 빠른 시간 안에 정상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날 말씀하신 얘기를 정리하면 작년부터 쭉 시장 상황 악화에 따른 매출 감소가 이어져왔고, 경영 악화로 인해 대출 기관 상환 압박 등으로 직원들 급여를 만들기가 어려워졌다. 따라서 앞으로 3개월간 전 직원들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급여의 40퍼센트만 회사에서 지급하고, 어떤 식으로든 미지급 급여에 대해서는 상환 계획을 세워서 향후 지급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난 이야기를 듣는 내내 농담이 아닌가 의심하며 들었다. 이런 상황이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급기야는 사실이 아닐 거라고, 내일이면 '짜잔'하고 월급이 통장에 들어올 거라고 막연한 기대까지 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노심초사하던 월급날이 되었다. 오전이 다 지나도록 급여 통장에는 변화가 없었고, 퇴근 무렵까지 월급이 들어오지 않고서야 어제 회의실에서 전달받았던 얘기들이 사실임을 직감하게 됐다.


그렇게 6시가 되어서야 급여 통장으로 돈이 들어왔고, 부사장님이 얘기하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돈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저녁 내내 통장을 확인했고, 금방이라도 나머지 돈이 들어올 것 같은 기대감을 저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는 반대로 회사는 처음 얘기했던 3개월간 40퍼센트 지급을 정확하게 지켰다. 회사의 이런 조치 때문에 직장 생활 7년 동안 만들지 않았던 마이너스 통장을 처음 만들게 됐다. 먹고는 살아야 했고, 들어가고 나가는 돈이 매달 뻔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런 급여 사태는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5년을 다니는 동안 총 세 차례에 걸쳐 유사한 방식으로 급여를 제 날짜에 받지 못하거나, 대체하는 형태로 급여를 지급받았다. 그중에서 일부는 장외주식(비상장사 주식)으로 받았고, 그 주식의 일부는 결국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면서도 정리를 하지 못했다.


퇴사하고 7년이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당시 경영관리실 부장이었던 분이 연락이 왔다. <oooo 주주 공지>라는 제목으로 비상장 회사이지만 보유한 주식에 대한 권리 행사가 가능한 '통일규격 주권' 발행을 추진하니 인적사항을 기재해서 문자로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 연락을 받기 전까지 내 앞으로 발행된 회사 주식이 있었는지 조차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직원들에게 발행한 사주도 부채에 해당하니 이를 어떻게든 정리하려는 목적이었을 듯싶다. 사실 큰 액수도 아니고 1,699주라고 하니 받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니 사실 돈으로 받을 수 있으면 받고 싶었지만 당시 회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귀찮은 일이 더 생겼고, 돌려받을 돈 대신 씁쓸함만 남았다. 

통일규격 주권: 
통일규격 주권은 다른 말로 통일주권이라고 한다. 주식회사에서 처음 비상장주식을 공모나 그와 유사한 행위로 불특정 다수에게 회사의 주식을 판매하면 가주권을 주주들에게 준다. 이는 쌍방 거래 시 법적으로 매매계약서를 작성해야만 거래 성립으로 보기 때 문에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주권에 대한 권리행사가 가능하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합법적으로 증권예탁원에 예탁이 가능하고 증권계좌 간에 위탁거래가 가능한 증권법상 규정되어 있는 주권을 발행하는데 이것이 통일주권이다. 통일된 규격으로 사용 편리성과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보통 공모 후 약 2~3개월 이상의 기간이 지나야 만 통일주권이 발행돼 가주권과 교환할 수 있게 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매일 경제) - 



얼마 전 읽었던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읽었던 한 부분이 생각난다. 소설 속에 이 차장은 카드사에 다니는 직원이다. 이 차장은 다니던 회사에서 맡고 있던 업무가 공연 기획이었다. H 카드에서 코로나 전에 유명 팝 아티스트 등 공연을 기획했던 것과 유사한 업무일 것이다. 어느 날 이 차장은 회장의 지시로 어떤 유명 클래식 아티스트의 내한 공연을 성공적으로 기획했다. 하지만 회장의 심기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혜택 기획팀'이라는 부서로 전배 됐다. 말이 전배지 좌천이나 다름없는 보직 변경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전배 됐던 부서의 카드 기획 행사 때 회장의 질문으로 아주 곤욕스럽고, 치욕스러운 일까지 겪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 카드를 써야만 하는 가장 강력한 이유가 뭔가? 하나만 꼽으라면 뭐라고 생각하나?"  

 "이 카드를 쓰면 포인트를 두배로 적립해 줍니다"

 "사람들이 포인트를 그렇게 좋아하나?"

 "네, 좋아합니다"  

 "그렇게 좋은 거면 앞으로 일 년 동안 이 차장은 월급, 포인트로 받게"

   -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 중에서 -


물론 난 소설 속에 이 차장과 상황은 많이 다르다. 일 년 동안 포인트를 받는다는 소설 속 이야기는 마치 말 그대로 소설 속 허구이고,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급여를 직접적으로 쓸 수 없는 비 상장사 사주로 받은 나보다는 실제 쇼핑이 가능한 포인트로 받은 이 차장이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건 조금은 유쾌한 소설의 엔딩 때문일까. 소설 속 이 차장은 포인트 사용 가능한 식당에서 밥 먹고, 장보고, 물건들을 구매해 중고 거래 마켓에 팔아서 현금으로 교환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살아질까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이야기였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렇게 급여를 주식으로 받았을 때만 해도 속도 상하고, 안타깝고, 받을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 보고 했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렇게 받았던 주식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개설해 놓은 계좌에 쌓여있는 주식수로만 존재할 뿐 앞으로도 현금화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잘 안다. 그래도 그거 없다고 큰일은 안 생겼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냥저냥 잊고 살 생각이다. 심보 고약한 소설 속 회장이나, 직원들 급여를 안 챙겨준 당시 대표나 속상하긴 하다. 그럼에도 난 살아야 하니까 그날의 감정은 고이고이 접어 지나가는 개를 줘버렸다 쳤다. '잘 먹고, 잘 살아라' 하고 악담하며 잊고 살아가는 게 내 정신건강에도 좋기 때문에. 어찌 되건 난 오늘을 그리고 내일도 살아야 하니까. 생각해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일도 아니고, 마음으로 욕 한 번 찰지게 하고 그냥 툭툭 털고 잊는 좋을 것 같다. 단지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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