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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Feb 08. 2021

부장님, 삼천만 빌려주세요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간절하게 들릴 누군가에게

부장님, 물건 비용 삼천만 원만 빌려주세요


난 IT 관련 기술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오랜 시간 기술부서에만 있었던 건 아니어 여러 부서들의 생리나 입장에 대해서는 다른 직원들에 비해 스펙트럼이 넓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업무 처리 시에도 유연한 편이다. 더구나 사업부서 소속 팀으로 몸 담고 있었던 시간이 길어서 영업사원들의 업무와 목표에 대해서도 너무도 잘 안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사업부서 직원들이 하나, 둘 퇴사하고, 새로운 부서와 새로운 사람으로 영업부 식구가 채워졌다. 새롭게 온 직원들의 의욕은 넘쳐 보였고, 젊은 직원들어서 그런지 활력 또한 충만해 보였다. 그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커다란 덩치에 조금 당차다 싶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치는 직원이 한 명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30대 중반까지도 봐지는 비주얼이었지만 실제 얘기를 나눠보니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풋풋한 청춘이었다. 다만 군대를 가지 않고 일찍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인지 커리어 상으로는 완전히 신입사원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넉살이 좋아서인지, 눈치가 없는 것인지 그는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차장, 부장들과도 말장난을 할 정도로 붙임성(?)이 좋았다. 조금은 버릇없는 듯했지만 편하게 대하는 그가 처음에는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당시 난 차장 직급이었고, 그는 대리 입사자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행동이나, 태도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무례했다. 앞에서는 예의를 차리는 듯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달랐다. 매번 자신의 실수에 다른 핑계로 일관하며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한 번기존 협력사와의 첫인사 자리에 자신이 처음이니 내게 동석을 요청했다. 열심히 하려는 후배가 예뻐서 흔쾌히 약속에 응했다. 약속일이 되었고, 약속 장소에 미리 기다리던 나는 시간이 지나서도 도착하지 않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한 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협력사 대표와 약속한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약속 장소에서 먼저 협력사 사장님과 만났고, 10여분이 지나서야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 차장님, 죄송해요. 미팅 중이라 전화를 못 받았어요.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냐니? 주 대리, 오늘 A사 사장님과 미팅 있는 거 잊었어?"

 "그 약속 내일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오늘이라고 주 대리가 내게 문자 줬잖아. 여기 사장님도 나와 계신데"

 "아,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바로 가면 한 시간 이내로 도착할 수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주의가 필요했지만 잠깐의 사과로 그는 늘 상황을 모면했다.  이후 이런 사고는 반복해서 일어났다. 이런 일뿐만 아니라 고객이나, 협력사의 전화나 업무상 메일도 종종 무시했고, 당장의 매출과 관계된 일까지도 영향을 주기 일쑤였다. 눈으로 확인한 것만 해도 여러 번이었고, 오죽하면 고객이나, 협력사 대표가 내게 전화해 그와 통화할 수 없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실제 그런 전화가 걸려 왔을 때 그는 맞은편 자신의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하거나, 자신의 세컨드 스마트폰으로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일이 잦았다. 결국 담당 영업이었음에도 고객사, 협력사를 골라 연락하고, 지원하다 보니 실제 고객사나 협력사에서 담당 영업을 바꿔달라는 요청까지 여러 차례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의 업무 태도나 자세는 변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고 퇴사했다. 2년 가까이 함께 일한 그에게는 선배도, 후배도 안중에 없었을 테고, 그에게는 동료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8년을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 달에 한, 두 번은 늘 연락을 하고 지내는 사이라 안부차 전화를 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잠깐의 안부인사 후에 그는 내게 '주 대리' 연락을 최근에 받은 적이 있냐고 물었고, 뒤에 나온 얘기는 정말 뉴스에서나 나올 이야기였다.


동료의 얘기는 이랬다. 오랜만에 주 대리에게서 톡이 왔고,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늦은 시간이라 함께 일했던 동료는 톡을 '읽씹'하고 오전에 연락을 다시 했다고 했다. 그냥 안부차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조금은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주 대리의 톡 내용은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번에 거래처를 뚫고, 사업 수주를 어렵게 했다. 그런데 물건을 사서 납품을 해야 하는데 물건 비용을 지불할 돈이 삼천만 원이 부족하다고 했다. 동료에게 삼천만 원을 투자해 주면 두 달 뒤에 오천만 원으로 갚겠다는 내용이었다


이걸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동료에게 전해 들었던 나도 의문스러웠지만 그런 톡 메시지를 받은 동료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동료는 그런 여유돈이 있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가깝게 지냈던 사이도 아니고, 오히려 많이 불편했던 사이였는데 이런 돈 부탁을 하는 게 이상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톡에도 있는 내용이지만 자신은 보이스 피싱이 아니고, 공증까지 서겠다는 내용이 있는 게 더 사기일 듯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동료는 몇 달 전에 그가 다니던 직장을 나와 작은 일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실제 돈을 빌려달라는 톡을 보낸 게 '주 대리'라면 정말 사업이 어려워서이던가, 아니면 그가 즐겨하던 주식 등에 투자가 목적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했다. 나중에 다른 직원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이런 메시지를 보낸 게 꽤 오래전부터였다고 했다. 주변만 해도 꽤 많은 사람이 똑같은 연락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고 했다.


이솝 우화에 '양치기 소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양치기 소년은 자신이 심심해서 번번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고했고, 마을 사람들은 수차례 양치기 소년의 말에 속아 무기를 가지고 양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번번이 양치기 소년에게 속은 것을 알고는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에도 양치기 소년의 도움 요청을 또 거짓으로 알고는 도움을 주지 않았다. 결국 늑대는 모든 양을 잡아먹게 되었고, 양치기 소년은 평소 거짓말로 자신의 소중한 모든 양을 잃게 되었다는 얘기다.


실제 주 대리가 어려움에 처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도움 요청에 잠시의 고민도 없이 동료는 그의 부탁에 난색을 표했다. 아마 누가 되었든 간에 그와의 관계가 진실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에 나오는 소년처럼 반복하여 사람들을 속였고, 그렇게 신뢰를 잃었을 것이다.


능력이 출중하고, 뛰어난 사람도 항상 높은 위치에 있으란 법은 없다. 내가 가졌을 때 베풀어야 정작 내가 궁핍하고, 어려울 때 내미는 손도 많아지는 법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믿음을 주는 것이 자신을 높이는 길이다. 동료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가 오늘 하루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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