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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Aug 02. 2021

아끼던 후배가 퇴사한 진짜 이유

늦은 나이에도 그는 아직도 꿈을 좇는다

"팀장님, 아니 형, 저 회사 그만두려고요"



십여 년 전 긴 시간 은행에 상주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였다. 프로젝트 중에는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수개월간 사무실을 비웠던 시절이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였던 시기라 업무 시간에는 자리를 비우는 것조차 힘든 시기였다.


당시 나의 관리자는 사무실 복귀가 힘든 직원들을 위해 이따금 고객사를 방문해 밥이나 술을 함께 하며 부서원들 관리를 하셨다. 특히 그분의  추천으로 당시 직장에 입사한 나였기에 다른 부서원들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게 느껴졌다. 그날도 그에게서 점심시간에 방문할 테니 잠시 보자는 연락이 왔다. 갑작스럽지만 긴 시간 고객사에 상주하며 있던 터라 아무리 불편한 상하관계의 부서장이라도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점심시간 전에 그는 고객사를 방문했고, 고객에게 인사 후 내가 있는 프로젝트 룸을 찾았다.


 "김 차장, 수고가 많아."

 "안녕하셨어요, 이사님. 오늘은 웬일이세요?"

 "아, 그냥 김 차장 얼굴 안 본 지도 오래됐고, 여기 이 친구 소개도 할 겸해서."

 그가 고개를 살짝 돌려 가리킨 옆에는 키 크고, 건장하지만 얼굴은 잔뜩 얼어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대충 외모만 봐서는 연배가 나와 비슷한 듯 보였지만 긴장한 얼굴 때문인지 오히려 나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듯했다.

 "이번에 김 차장이랑 같은 팀에서 일하게 된 이호준 과장이야. 이 과장도 김 차장이 처음이지. 팀장이 없으니 팀장 대행쯤 되려나. 이쪽은 김철수 차장. 서로 인사해"

  "아, 아... 안녕하세요. 이호준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차장님"

  "네, 안녕하세요. 김철수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후배와의 첫 만남은 대충 그림이 이랬다. 고객사 프로젝트로 정신없던 와중에 나와는 상반된 캐릭터쯤 되어 보이는 직원이 인사를 왔다. 조금 얼어 보이는 표정 때문인지 당시 과장이라는 직급에 맞지 않게 여유도 없어 보였다. 한 마디로 업무 센스도 없어 보였고, 외모와는 다르게 호방한 성격도 아닌 듯했다. 결국 나의 착각이었지만.


그렇게 첫 만남 이후 그를 다시 본건 사무실로 복귀하고 나서였다. 처음 고객사에서 보던 때와는 많이 여유가 있어 보였지만 아직은 업무 스킬이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경험이 부족한 동료였다. 복귀 후 난 자연스레 팀장 직책을 받게 되었고, 팀장으로서의 소임 중 하나인 팀 내 업무 할당을 하게 됐다. 당연히 새롭게 입사한 동료에게도 업무 분장을 해야 했다. 당시 많은 프로젝트 때문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과장에게도 반신반의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걱정과 우려는 기우였다. 입사한 지 삼개 월도 되지 않던 이 과장은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부으며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물론이고, 제품에 대한 이해, 많은 학습량을 통한 지식까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걸 준비했음을 알았고, 아쉬운 경험치도 시간이 지나며 어느 정도 충족해 가기 시작했다.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도맡아서 하려 했고, 본인이 맡은 프로젝트에는 최대한 잡음이 없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관리자로서야 뿌듯하고, 든든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열심히만 하는 그가 안쓰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예전 내 관리자처럼 프로젝트 나가 있는 그를 찾아가 밥 사주고, 술 사주고 그리고 힘이 든다는 그의 얘기를 경청해 주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밥 사달라는 얘기를 잘하지 않던 이 과장이 전화로 저녁을 사달라고 했다. 조금은 놀랐지만 얼굴을 못 본 지도 이, 삼주가 넘어서 그가 일하는 고객사 앞으로 찾아간다고 말했다. 그렇게 찾아간 고객사 앞 식당에서 그와 마주 보며 평소같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나눴다. 생각과는 달리 그날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 다른 점을 찾자면 주로 얘기하는 사람이 나였다는 것 정도였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 취기가 조금 오를 즈음 그가 꾹 닫고 있던 입을 뗐다.


 "팀장님, 아니 형, 저 회사 그만두려고요"

너무 갑작스럽고, 놀라웠지만 요즘 그의 일의 양이나, 일하는 강도를 보면 십분 이해가 갔다.

 "왜? 일이 너무 힘이 들어서. 일 때문이면 이번 프로젝트 끝나고 들어오면 당분간 내근하면서 지낼 수 있도록 애써볼게"

 "아뇨, 일이 힘든 건 맞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요"

난 그의 대답이 조금 의외였지만 그동안 묵묵히 일해온 그를 생각하면 애저녁에 얘기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에게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럼 왜? 집안 문제야?"

잠시 고민하는 듯 한 그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다시 입을 뗐다.

 "저 예전부터 영어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거든요. 당장 갈 건 아니지만 이제 알아보게요"

당장 정해진 곳이 없다는 얘기에 조금은 안심했지만 그의 답변이 조금은 현실적이지 않아 보였다. 이직의 사유 또한 조금은 의외여서 당장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 않을 일이라 생각하고 '그래, 알았어' 정도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장의 말에 설득, 회유는 의미가 없었고, 벌어진 일이 아니라 더 이상 깊게 논하지는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한 달 뒤 이 과장은 프로젝트에서 복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정말 회사를 떠났다. 그가 얘기했던 영어를 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의 회사로. 그렇게 꿈을 찾아 떠난 이 과장은 지금까지도 십여 년을 영어를 할 수밖에 없는 회사로 출근한다. 물론 중간에 잠깐 공기업으로 외도는 했었지만 그래도 이번에 입사한 회사까지 벌써 네 번째 외국계 기업이다. 후배는 이젠 직급도 임원이다. 임원으로 승진해서 축하말을 건넨 내게 그는 농담으로 '형 빨리 달면 뭐해요. 빨리 달면 빨리 나가야 하는 건데요'라고 했지만 내심 부럽다.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까. 지금도 그 후배는 열심히 자신의 자리에서 꿈을 좇아 열정을 불태운다. 그런 그가 부럽기도, 자랑스럽기도 하다.


이 과장, 아니 내가 아끼는 그 후배와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햇수로 15년이다. 사람 인연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나 보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꽤 강해 보이는 인상에 몸집까지 커서 쉽게 가까워질 거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나와 근무하기 이전의 이력은 눈에 띌만한 게 없어서 알게 모르게 오래 함께 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접 그 후배를 겪어보고, 동료로 함께 일해 보면서 그의 역량과 열정에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한 팀의 관리자로서 그가 너무도 믿음직스러웠다. 예전만 해도 기술적 문의를 해오던 후배였지만 이젠 그냥 안부 전화가 전부다. 아니 이젠 우리 사이에는 함께 늘어가는 세월만큼 친구 같은 관계가 더 어울린다.


얼마 전 돈가스 전문점에 음식을 주문해서 포장된 음식을 받았다. 바깥에 주인장의 포스트잇 메모가 붙어있었고, 메모에는 '저희 돈가스는 겉바속촉 한 ~'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외유내강과 반대 정도 되려나 싶다. 아마 후배를 표현하면 딱 '겉바속촉' 같은 느낌이다. 겉으로만 봐서는 강해 보이기만 한 녀석인데 내겐 그렇게 따뜻하고, 살갑게 구는 걸 보면 딱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바로 그런 고마운 후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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