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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16. 2021
십 년간 애증의 관계였던 널 이젠 떠나려 합니다
마음만 고쳐먹었더니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더라
"김 부장, 소프트웨어 전달 전에 개발 단위 시험을 좀 해봤으면 하는데 오늘 이 일 먼저 해줘요"
"본부장님, 지금 하는 업무는 어떻게 하라고요. 당장 문서 제출도 코앞인데 지시한 일까지 하면 제 일은 누가 대신해 줍니까?"
진행 중이던 업무의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날 선 감정으로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난 진행하는 프로젝트 관리자라 계획부터 협의 후 개발 요청, 진행에 이르기까지 프로젝트 전체에 걸쳐 모든 업무를 관여했다. 문서 작성, 개발 사항 확인 및 검증 그리고 최종 기관 제출까지 모든 게 내 업무였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어찌 가는 줄도 모르게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렇게 많은 업무들을 혼자 하다 보니 여기저기에 구멍이 날 것같이 매 시간이 살얼음 판이 따로 없었다.
얼마 전까지도 인력 부족에 대한 고충이나, 불만을 얘기했다. 하지만 개선되지 않은 구조적 문제와 관리자의 실행력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야근으로 일을 메워 나갔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한계에 부딪친 지 오래였다. 건강 상태는 나빠졌고, 게다가 스트레스 또한 심각한 상태였다. 사무실에서 늘 웃고, 떠들던 나였는데 얼마 전부터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하루를 보낸다. 자리에 앉으면 몇 시간이고 일어나지 않는 건 기본이고, 식사도 가끔 거르기 일쑤다. 묵언 수행하는 스님들처럼 조용히 자판만 두드리며 모니터와 씨름하는 게 일과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 터질게 터지고 말았다. 평소에도 업무 진행에 버거움을 느꼈지만 최근 들어 평가 기준이 더 엄격해졌다. 기준도 엄격해졌는데 사람까지 덩달아 난리였다. 평가기관의 협박성 압력과 갑질로 스트레스는 극도로 치솟았다. 몸도 마음도 지친 요즘 정말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달라지지 않는 업무 환경, 줄어들지 않는 업무의 양, 인력 충원 없이 몇 개월을 더 달릴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혀왔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며 일하는 기계처럼 몇 주를 더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금 업무 환경에서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자 내 마음은 어느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10년을 몸 담았던 회사를 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을.
이미 여러 차례 위기는 있었지만 그래도 지혜롭게 버텨왔던 긴 시간이었다. 그런 순간들 속에서도 비슷한 생각은 했지만 실행으로 옮기진 못했다. 하지만 몇 주전부터 난 이직을 위한 여러 준비들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여러 구직 사이트 근황 업데이트부터 증명사진까지 다시 찍었다. 그리고 최종 단계인 채용정보를 찾아보며 적성이나, 조건에 맞는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온라인 이력서도 오픈하고, 입사지원서를 넣으며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아직 있던 자리에서 몸을 움직인 건 아니지만 이직을 위해 행동하는 것만 해도 내겐 무언가 탈출구 같다는 느낌이었다.
내게 이직 자체만 보면 첫 직장을 빼고는 번번이 무언가 갈등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늘 답답함이나, 무언가의 부당함 그리고 이번같이 불확실성이나, 업무 환경, 사람과의 관계 등이 그 시작이었다. 지나고 나면 드는 생각이지만 옛말 틀린 게 없는 것 같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