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직의 경험이 많다. 이렇게 이직하는 동안 같은 기간 직장을 다닌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함께 일한 동료부터 사람 좋은 채널사 직원 그리고 갑질 끝판왕 고객까지 서로의 관계도 다양했다. 사람 오래 살고 볼일이라고 하지만 직장생활 오래 하면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사람을 나는 많이도 겪었다.
그중에서는 지금까지도 인연이 되어 만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가차 없이 끊어낸 관계의 사람도 있다. 당시 업무라는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엮여서 지냈지만 그 굴레에서 벗어난 순간 스마트폰 연락처 차단하듯이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웠다. 엮인 매듭이 풀리자마자 그렇게 뒤도 안 보고 관계를 정리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데는 모두 이유가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 이어진 인연이라는 게 공통분모인 업무를 떼어내고 관계를 이어가긴 어렵다. 세월이 가면서 그렇게 마주한 현실을 더욱 깊이 느낀다.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과거 회사 동료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직장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면 만날 기회가 드물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직장에서의 좋은 관계는 한계가 있다. 조금 과장해서 같은 회사를 다니는 동안 둘도 없는 사이로 지냈다고 하더라도 한 사람이 이직만 하면 그 관계를 이어가기란 쉽지가 않다. 하물며 오며 가며 인사 정도만 하거나, 업무로만 엮여서 지낸 사이가 서로 다른 곳으로 이직하게 되면 직장 밖에서의 모임을 이어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그 관계가 상하 수직적 관계일 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직장에서의 관계도 사회적 관계 측면에서 따져보면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무시할 수는 없다. 20년이 넘게 직장을 다니면서 동종업계 다니는 사람들끼리는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세상은 좁고, 같은 일 하는 사람끼리는 어떻게든 만나 진다. 회사 동료로든 혹은 경쟁사 직원으로든
나이가 들면서 이직을 위해 퇴사하는 동료나 후배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다. 퇴사하는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하는 일이지만 항상 지켜지는 것은아니다. 이제 다른 회사로 옮기는 마당에 다녔던 직장에 대한 배려나 책임을 내팽개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더 이상 꼴 보기 싫은 회사일 수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직장 선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다고 해도 티 내며 좋지 않은 모습으로 마지막을 정리할 필요는 없다. 퇴사했던 직원들을 생각해 보면 일하는 동안 아무리 잘해도, 마지막 마무리가 안 좋은 사람은 회사를 떠나서도 욕을 먹는다. 그래서 난 아끼는 후배, 동료들에게 어차피 조금만 참으면 떠날 회사인데 마무리에 조금만 신경 쓰면 나중에 득이 되면 득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말을 해준다. 실제로도 동료 중에 재직 중 업무 능력은 부족했지만 마지막 마무리를 잘하고 갔더니 퇴사 후에도 도움 줄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
어디 영화나 정치판에서 나올법한 이야기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이런 문구가 문뜩문뜩 머릿속을 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앙숙같이 지내던 직장 선후배 사이끼리도 이직 후 다른 직장에서 만나면 반갑게 마주할 수도 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과거의 어두웠던 흑역사는 잊고 새롭게 출발하는 동료가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난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차례 이직을 경험했다. 여러 차례 이직들 중 두 번이나 함께 일한 동료, 지인들 추천으로 회사를 옮겼다. 물론 헤드헌터나 옮긴 회사 인사 담당자의 직접적인 요청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알고 지낸 사람의 요청이 조금 더 신뢰가 갈 수밖에 없다. 이직이라는 낯선 환경에 알고 지냈던 과거 동료, 지인의 존재 의미는 이직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이해와 공감이 가는 일이다. 단순히 알고 지냈던 사람이라고 해도 이직과 같이 낯선 환경에서는 그전에는 없었던 우정, 의리도 싹트는 법이다.
이직을 결정하고, 퇴사를 위한 처리를 하는 동안 어떤 상황에 놓이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갈등하게 된다. 물론 많이 힘든 상황을 겪을 수도 있다. 나 또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 이직을 경험했다. 이전 직장을 퇴사하면서 '세상에서 퇴사가 가장 어려웠어요'라는 상황을 경험했었던 나로서는 '아름다운 이직'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다녔던 이전 회사를 퇴사할 당시 내게 일어났던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다. 편하게 퇴사시키지 않으려고 기술직이었던 내게 관리본부 본부장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라는 상황도 있었다. 또 퇴사 전까지 회유와 협박을 받았던 적도 여러 차례였다. 이런 특수한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는 이상 최대한 잡음이 없게 조용하고, 예의를 갖춰 퇴사하는 것이 다른 누구보다 자신을 위한 일임을 시간이 지나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의 직장들은 이런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중추적 역할을 하던 사람이 이직으로 빠졌다고 하더라도 조금 시간이 걸릴 뿐 그렇게 빠진 자리를 또 다른 누군가가 채우기 마련이다. 하물며 평범한 직장인들이 일하다 빠진 자리는 티조차 나지 않을 만큼 금세 매워지기 마련이다. 재직 당시 '서운했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급여가 적었다' 등의 많은 이유로 퇴사하며 지저분하게 업무 마무리를 하는 것은 결국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부족함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걸어 나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라고 해봤자 길어야 한 달이다.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웃는 얼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기본은 하고, 최소한 공손하게 퇴사해야 한다. 그럼 함께 고생한 동료들도 고맙게 생각할 것이고, 관리자 입장에서도 적어도 무난했던 직장 동료로 기억할 것이다.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
사람이 있을 때는 존재감, 중요성을 모르지만 있다가 사라지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커 보인다는 의미로 많이 쓰는 말이다. 물론 내가 퇴사한 자리가 너무 커 보인다는 얘길 듣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면 적어도 내가 나간 자리도, 들어온 자리만큼 조용히 지나갈 수 있게 된다. 소란스럽고, 예의 없게 퇴사한 사람은 적어도 그 사람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는 그날까지 듣지 않아도 될 욕을 꾸준히 먹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결코 유쾌하지는 않은 일이다. 어떻게마무리해야 하는지는 모두 자신의 손에 달려있다는 걸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