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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결계의 도시

핏빛 혼돈의 새벽

by 추억바라기

피의 의식이 멈추고 강당이 무너져 내린 뒤 다섯은 곧장 도시 곳곳으로 흩어졌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의 얼굴은 결연했다. 교주는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문양들은 성림시 전역을 여전히 옭아매고 있었다. 동이 트기 전까지 숨 돌릴 틈조차 없이 그들은 도시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폐허가 된 병원 지하실에는 거대한 문양이 바닥 전체에 새겨져 있었고, 새벽의 어둠 속에서도 심장처럼 울렁이며 붉은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병원 지하실에 먼저 도착한 것은 미란이었다. 미란은 허리춤에서 부적을 꺼내 몸을 날리며 힘껏 던졌고, 문양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몸부림쳤다.

"물러서세요!!!"

미란은 자신을 따라 병원 지하실로 들어섰던 유진을 향해 경고음을 보냈다. 미란의 목소리를 들은 유진은 달리던 방향을 바꿔 기둥뒤에 몸을 숨겼고, 이내 미란이 날렸던 수십 장의 부적이 공중에서 폭발하듯 터졌다. 불꽃처럼 번진 주황빛이 문양을 녹이자 땅에서 커다란 울음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파사진언!"

유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염주를 문양의 중심으로 던졌다. 문양을 향해 날아가던 염주가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보이지 않는 문양의 실체를 묶었다.

"꿰엑-, 꿰엑-" 마치 살아있는 짐승과 같은 소리를 내며 문양의 빛이 밝아졌다가 서서히 꺼져갔다.

"바로 연을 봉해야 합니다." 합장한 자세를 풀지 않으며 유진이 무겁게 말했고, 부적집에서 부적을 하나 꺼낸 미란이 손으로 인을 맺기 시작했다.

“신명이시여, 이 땅을 어지럽히는 검은 혼을 물리치소서!” 미란이 외침과 동시에 손에 들려있던 부적이 푸른 화염에 휩싸였고, 푸른 화염의 부적을 허공에 날리자 한 장이었던 부적은 수십 장으로 분해서 문양을 감쌌다. 그 모습은 마치 화염으로 둘러싼 진과 같았다. 그렇게 푸른 화염에 둘러싸인 문양은 "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재가되어 사라졌다.

한편 강림과 같이 움직인 준우는 성림항에 들어섰다. 강림은 성림항에 들어서자 곧장 휴대 장치에 손을 얹어 주변 기운을 확인했다. "우측에 쌓여있는 컨테이너 단지 쪽에서 신호가 강하게 느껴져." 말을 마친 강림은 휴대장치를 거두고 들고 있던 총몸통을 당겨 장전 후 몸을 날려 컨테이너 쪽을 향했다. 오른손에 힘을 모아 푸른 결기의 검을 뽑아 든 준우도 강림의 뒤를 쫓았다.

수십 개의 컨테이너가 여기저기 쌓여있는 곳에 도착하자 그들 앞을 검은 악귀들이 막아섰다. 모습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검게 변한 눈동자에,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굶주린 맹수와 같았다. 준우는 결기의 검을 고쳐 잡았고, 강림은 이미 그들 중 하나에게 총을 발사했다. 총을 맞은 악귀가 비명과 함께 재로 변했고, 나머지 악귀들은 둘을 향해 달려들었다. 맹수와 같은 몸놀림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금세 당했겠지만 둘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준우가 몸을 날리며 결기의 검을 휘두르자 푸른 검기가 사방으로 날아가 검기에 닿는 악귀들은 하나같이 재가 되어 버렸다. 강림 또한 몸을 굴려 측면에서 다연발 총을 발사했고, 발사된 탄환은 해담의 이기어검같이 살아있는 듯 악귀를 쫓아 소멸시켰다. 수십에 달하던 악귀는 이제 문양 앞에 셋 밖에 남지 않았고, 더 이상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 번의 공격으로 문양과 악귀들을 소멸시키고자 준우가 다시 한번 힘을 끌어 모을 때였다.

'푸른 결기는 원래 너의 힘이 아니야!'

준우의 귓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푸른 결기의 검에도 전해졌는지 일 미터내외의 환도(環刀) 길이였던 푸른 결기의 검이 작은 나이프 크기로 줄어들었다. 어디서 들렸는지 알 수 없는 소리에 준우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준우야! 정신 차려. 어디다 넋을 놓고 있는 거야." 강림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준우는 다시 한번 힘을 모았고, 결기의 검 주변으로 커다란 푸른빛이 원 모양으로 뭉쳤다. "결기의 파동! 악이여 소멸하라!" 준우의 외침과 함께 푸른빛은 문양을 향해 날아갔고, 세 악귀는 피할 새도 없이 문양과 함께 검은 재로 소멸되었다. 동이 트기 전까지, 그들은 도시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하룻밤 새 수십 개의 봉인이 끊겼고, 그만큼 많은 붉은 문양이 빛을 잃으며 사라졌다. 수 차례에 걸쳐 준우가 결기의 파동을 발동하였고, 미란의 손끝에서 부적들은 불꽃처럼 날아가 폭발했다. 해담은 인을 맺고 이기어검을 조정해 수 백의 악귀를 꿰뚫어 소멸시키는데 온 힘을 쏟았다. 유진은 불가의 법력이 실린 염주를 날리며 봉인과 연환(戀還)을 도왔고, 강림은 수백 발의 총을 쏘며 교주의 음모로부터 도시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어느새 모두는 땀범벅이 되었고, 체력과 정신력이 모두 소진되었다고 해도 믿을 만큼 힘에 부쳐 보였다.


해가 솟아오르기도 전에 성림시의 하늘은 벌써 햇살의 기운으로 붉게 번져가고 있었다. 전날 새벽 무너진 강당의 잔해를 뒤로하고, 다섯은 각자 다른 곳에서 정보를 모았다. 많은 문양을 제거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결계의 문양으로 도시는 무거운 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바다, 산 능선, 도심 곳곳에 남아있는 비슷한 문양 때문에 도시의 지맥(地脈)이 끊겼고, 그 문양들이 이어져 거대한 결계가 되었다. 문양들은 보이지 않는 벽처럼 도시 곳곳을 감싸며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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