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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Feb 05. 2020

김대리는 회식 중에 왜 집에 갔을까?

꼰대 아빠의 육아일기(2)

 "팀장님,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야, 김 대리. 한참 회식 중에 어딜 간다는 거야. 집에 급한 일 있어?"

 "저희 민수 목욕시켜야 해서요."

 "......"




지난 1편에 이어 두 번째 꼰대 아빠의 육아일기입니다.


난 첫 직장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했고, 아내와 미리 계획한 대로 결혼 후 2년이 지나 아이를 낳았다. 아내와 나에게는 모든 게 처음이었고, 아이의 모든 행동들이 우리에게는 무언가 의미가 부여됐었던 시기였다. 모든 게 서툰 우리는 많은 부분들을 책에 의지했고, 그때 당시만 해도 주변에 육아 관련 조언을 줄 수 있는 분들은 많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때는 인터넷을 통해 유익한 정보들을 얻기에는 많이 미흡했고, 부족했었던 시절이라 우린 아이를 키우는데 많은 부분을 육아 관련 서적이나 직장 선배들의 작은 조언이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10여 년 전에 아이를 키우던  부모들의 필독서와 같은 유명한 책이 있는데, 소아과 전문의 하정훈 선생님이 쓴 '삐뽀삐뽀 119 소아과'라는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마음에 가졌던 첫 번째 생각이 책임감이었고, 아내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었을 때와는 또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작은 내 아이를 볼 때면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아내는 결혼 후 1년 동안 직장을 다니다가 아이의 임신, 출산을 기점으로 아이의 엄마, 나의 아내 역할을 전업으로 삼으며 생활했다. 우리는 서울에 연고도 없어서 아내의 출산 이후 전업 주부는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몰랐다. 항상 집에 아이와 둘이서 생활하는 아내가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스러워서 육아의 일부는 내가 책임을 갖고 하려고 했었고, 첫 번째 이야기에서 썼던 것처럼 아이를 재우는 일은 내가 전담해서 했었던 일이었다. 이렇게 아이를 재우는 일 이외에도 내가 도맡아서 했던 일이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그게 바로 아이의 목욕이었다. 아이가 너무 어릴 때는 아내와 함께 목욕을 시켰지만, 아이가 목을 가누면서부터는 내가 아이의 목욕을 전담했었다. 

  그날도 출근 후 일상의 업무로 분주하게 보내고 있을 때, 팀장님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 팀원들에게 퇴근 후에 개인 약속이 있는 팀원들이 있는지 물어보며 오늘 퇴근 후에 회식을 한다고 공지했다. 퇴근 시간 전에 아내에게는 미리 오늘 회식한다고 알려주고, 퇴근 후 회식장소로 이동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만 3년이 지났지만 팀에서는 아직 막내였던지라 회식자리에서도 여러 가지 챙겨야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선배들하고 관계도 좋았고, 팀장님에게도 나름 인정을 받고 있었던 터라 회식 자리가 싫지는 않았고, 그 맘때 팀 분위기도 좋았을 때라 다들 술을 먹을 때 적당히가 되질 않았다. 회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팀 사람들은 제법 술도 오르고, 분위기도 오른 상태였다.


 난 핸드폰의 시계를 자꾸 확인하게 되었고, 시간은 어느덧 내가 생각한 마지노선에 다가와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을 끌면 오히려 분위기도 이상해지고, 빠져나가는 것도 이상해져 보일 것 같았다. 이런 불편해 보였던 내 모습을 본 선배 한 명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고, 기회는 이때다 싶어 뒤에 놓아두었던 옷을 챙기고, 옆에 내려놨던 가방을 메었다. 일순간 모두의 시선은 가방을 메는 나를 주시했고, 의아하게 바라보던 팀장님께 인사를 꾸벅했다.


 "응, 뭐야?" 상황 정리가 안되던 팀장님이 조금 놀란 얼굴로 물어봤다.

 "팀장님,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난 망설임 없이 팀장님의 물음에 답했고,  "야, 김 대리. 한참 회식 중에 어딜 간다는 거야. 집에 급한 일 있어?" 팀장님은 어이없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재차  물어봤다.

 "저희 민수 목욕시켜야 해서요."  난 그 순간 4년 차 막내가 짜낼 수 있는 최선의 용기로 답했다.  팀장님은 아무 말이 없었고, 선배 한 명이 급하게 상황을 정리하며 나를 서둘러 집으로 보내면서 회식 자리의 에피소드는 일단락되었다.

  실제로 아이들과의 스킨십은 자주 그리고 어려서부터 시작하는 게 자연스럽고 좋다고 한다. 특히 엄마는 아이  양육의 많은 부분을 맡고 있기 때문에 싫든 좋든 아이와의 스킨십은 자주 할 수밖에 없지만, 아빠들에게는 아이들과의 스킨십에 대한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일반적인 현실이다. 아이들이 커서 갑자기 하는 스킨십은 오히려 어색하고,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따라서 아이가 어릴 때부터 스킨십을 자주 하는 게 아이에게도 그리고 아빠에게도 자연스럽고 좋은 듯하다. 자연스럽게 아이의 목욕을 아빠가 맡아서 하다 보면 아이와의 유대감은 성장해가며 더 돈독해질 것이고, 실제로도 우리 아이들을 보면 아빠와의 유대감, 친밀감이 꽤 높은 편이다.

 아내는 요즘도 농담 삼아 곧잘 아들에게 얘기하는 말이 '아들, 넌 아빠가 절반은 키웠어' 일 정도로 큰 아이 육아에는 참여도가 높았었다.


 그 날의 일로 크게 바뀐 건 딱히 없었다. 한 가지 바뀐 게 있다면 회식 자리에서 9시만 되면 팀장님이 항상 물어보는 말이 생겼다는 것 정도.


 "김 대리, 아이 목욕시키러 가야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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