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Jun 02. 2020

당신이 팀 분위기 흐리는 거 알기나 해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최고 꼰대와의 만남

이봐, 김철수 씨 당신이 우리 팀 분위기 전부 흐리는 거 알기나 해?




난 IT 관련 기술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이 바닥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직 관련해서는 정답도 오답도 없는 게 현실이다. 다른 직군에 비해 주니어들의 이직률이 높은 업종이고, 첫 직장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3년이 되면 회사 밖을 보게 되고, 5년이 돼서 지금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면 이직 실행력과 빠른 행동력이 많이 속해 있는 직업군이다. 특히 소프트웨어 솔루션 제조사나 지원 업무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직률은 더 높은 게 현실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힘이 들고, 조건이 아쉬워서이다.


  난 첫 직장에 만족도가 꽤나 높은 회사원이었고, 팀원들 간의 유대감도 끈끈해 마음 같아서는 오래오래 다니고 싶은 마음이 컸었다. 하지만 현실은 나를 그렇게 두지 않았고, 나도 다른 사람들과 유사하게 이직의 이유야 찾으면 많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경력 5년, 대리 2년 차임에도 팀에서는 막내나 다름없었고, 급여 조건도 만족스럽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5년 동안 취업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보지 않았던 나는 이직을 마음먹고, 취업 포털 사이트에 시간을 내 개인 커리어 사항들을 업데이트했다. 한창 일할 5년 차 대리였던 난 커리어를 업데이트 한 다음날부터 헤드헌터들로부터 이직 제의를 계속 받았고, 정말 골라가는 재미가 있는 것 아닐까 하며 내가 마치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들기까지 했다. 여러 곳 면접 제의를 거절하고, 이곳저곳 조건을 따지고서 면접을 결정한 곳은 국내 네트워크 장비 제조사 중 꽤나 이름과 규모가 있는 곳이었고, 인터뷰를 결정한 이유도 헤드헌터가 아닌 회사 인사팀에서 직접 연락이 와서였다.


  기술 관련 자부심도 꽤 있었고, 5년 동안 담당했던 업무 또한 국내 네트워크 제조사에서 좀처럼 다루기 어려웠던 기술이었다. 인터뷰 내내 자신감 있는 태도로 임했고, 인터뷰 심사를 나왔던 심사관들은 이런 점을 높게 평가해 내가 입사하는 것을 최종 통보해 줬다. 조건도 맞았고, 회사에 인정을 받고 입사하는 듯해서 기분도 좋았다. 다만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담은 첫 이직이라 어쩔 수 없었지만, 초심의 마음을 잃지 않고 그곳에 가서도 열심히 하면 인정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사를 한 첫날부터 조금은 불편한 마음이 가슴 한편에 꼬물꼬물 올라오고 있었고, 난 정확히 그게 무언 지는 콕 집어 이야기하기에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는 보이지가 않았다. 6시가 되어서 첫날이라 할 일도 없었고, 하루 종일 한 업무라고는 진행해야 할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와 컴퓨터 세팅 그리고 회사 시스템 사용에 대한 안내가 전부였다. 야근할 이유도 없었고, 야근해도 딱히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조용히 가방을 싸려고 하던 찰나에 팀 동료 중 한 명이 조용히 다가와 저녁 식사 안 하냐고 물었고, 난 호의를 거절하기가 뭐해 야근을 위한 저녁식사에 팀원들과 동행했다.


  저녁식사는 근처 푸드코트였고, 식사하려고 나서봤더니 함께 근무하는 팀원들 전부가 저녁식사를 함께 하려고 나선 것을 알았다. 조금 놀랐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고, 저녁을 먹으면서 그 이유를 듣게 되었다.

 "장 과장님, 팀원 전체가 매일같이 야근하는 건 아니죠?"

 "김 대리님은 오늘이 처음이라 익숙하지 않겠지만 저희는 일도 많지만 팀장님이 퇴근하기 전에는 9시 전에 퇴근하기 어려워요."

 농담인가 싶었지만 그의 표정에서 진지함이 읽혔고 난 현실에 대한 자각이 이제야 오는 것을 후회했다.

 "에이, 설마 요즘 그런 매니저가 어디 있다고. 일 있으면 야근하고, 일 없으면 일찍 일찍 들어가는 거죠. 팀장님도 일찍 가시는 날이 있으실 테고."

  내 말이 나올 것을 미리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장 과장은 내 말에 대꾸했고, 그 말에 난 더 이상 물어볼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저희 팀장님이 '설마'하는 그런 분이에요. 주말에도 종종 출근하는 터라 저희도 죽겠어요. 퇴근도 술 먹는 약속 아니면 11시는 넘어야 퇴근해요."

 

  저녁 먹던 숟가락을 놓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주변 시선도 있고 해서 우선은 식사를 어렵게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과장의 얘기도 있고 해서 난 식사를 했으니 9시까지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9시가 되어서 가방을 싸고 팀장에게 인사하고 퇴근을 서둘렀다. 팀장에게 인사할 때는 눈치가 보여 꽤나 신경 쓰였지만 인사를 받은 그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하고는 그 시간에 퇴근하는 사람은 없었고, 화요일도, 수요일도, 목요일도 9시까지만 근무하고 퇴근을 했다. 이렇게 일찍(?) 퇴근한 것도 4일이 지났고 5일 차였던 금요일엔 그래도 주말이라 저녁도 안 먹고 8시 30분에 가방을 서둘러 싸고는 퇴근할 준비를 했다.


  걸려있던 시계가 8시 45분이 되어서 난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이내 팀장의 호출에 퇴근 제지를 당했고, 자리로 간 나에게 팀장은 이직에 대한 후회를 확실히 깨우쳐주는 한마디를 던졌다. 난 정말 당황했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전 직장 퇴사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팀장 :  김 철수 씨, 오늘도 퇴근합니까?

 나    :  네, 아직 테스트 제품도, 펌웨어도 받지 못해서 시험은 다음 주부터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팀장 :  그렇다고 아직 9시(PM)도 안되었는데 퇴근할 준비를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내가 1주일을 지켜봤는데 매일 일찍 가더군요.

 나    :  팀장님, 매일 밤 9시에 퇴근했고, 오늘만 10분 정도 일찍 나서려고 했는데요.

 팀장 :  그러니까 왜 매일 9시에 퇴근해요. 다른 팀원들은 11시에 퇴근들 하는데. 당신이 우리 팀 분위기 흐리는 거 알아?

  난 이 일을 개기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면 어디든 이직을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이 회사에는 2달밖에 다니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말았다. 15년 전 일이지만 정말 꼰대 중에 상 꼰대를 만나 고생한 2 달이었다. 그나저나 그때 A 팀장은 지금도 잘 살려나?

이전 05화 김대리는 회식 중에 왜 집에 갔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