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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Jun 08. 2020

회장님 딸이라고?

진급도, 씀씀이도 클래스가 다르네

"부장님 그 얘기 아직 안 쓰셨어요?"

"응, 그게 나하고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직원도 아니고, 그 이야기 말고는 쓸게 없어서."

"에이, 그래도 그만한 이야기가 흔한 가요."

"하긴 어디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글감이긴 해."


  아침 출근길에 만난 회사 직원이 내게 얼마 전 알게 된 이야기를 브런치에 왜 쓰지 않냐고 물어본다. 함께 일하는 동료도 아니고, 알고 있는 직원도 아니라 조금은 어설프게 에피소드를 쏟아낼 듯도 하고, 소재도 딱 이야기의 핵심 거기까지여서 차일피일 미뤄왔던 글감이었다.  하지만 가볍게 풀어낼만한 에피소드라는 생각에 오늘 아침 만난 동료의 부추김을 못 이기는 척 받기로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IT업체로 창업한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중견 기업이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의 주인은 여러 차례 바뀌었고, 지금 회사의 대주주는 우리 회사를 인수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모 그룹이다. 입사하고 사무실을 여러 차례 이전했지만 자발적 이전보다는 대주주가 바뀌며 이런 바뀐 대주주의 의견이 수렴된 이전이 대부분이었고, 지금 회사가 위치한 사무실도 이런 바뀐 대주주의 의견 및 경비 절감 등의 이유로 이전을 했다.


  이런 이유 이외에도 다른 이유들도 많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기업이 자회사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말이 좋아 관리지, 정확히 따지고 들면 관리감독이지 않을까 싶다.  실질적으로 모기업의 비호 아래 복지 혜택을 본다던가, 모기업과 비슷한 연봉을 받는다던가 등의 장점을 기대하는 직원들도 있지만 이런 일들은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래도 모기업의 이름값에 대한 다른 회사나 동종업체의 부러움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풀어놓을 에피소드는  이런 모기업의 비호도, 이름값에 부러움도 아닌 그냥 알은체 하면 조심스럽고, 모른 체 하자니 입이 근질근질한 이야기다.



  얼마 전 게시판에 인사 관련 공지가 붙어있는 것을 지나가는 길에 보게 되었다. 사실 내가 있는 회사는 IT기업이라 이런 인사 공지나 공고 등은 그룹웨어와 같은 시스템으로 하지 오프라인으로 게시판에 붙여놓거나 대자보처럼 공지하지는 않는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는 작년에 사무실 이전을 했고, 이전한 건물에는 모기업과 함께 사무공간을 써야 하는 불편한 부서들이 있다. 그런 일부 직원 중에 불행히도 나 또한 포함되어있다. 즉, 인사 관련 공지는 우리 회사가 아닌 모기업의 인사 공지였고, 모기업은 회사의 오랜 역사만큼 인사 관련 공지도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재미 삼아 인사 공지를 본 나는 조금 의아한 인사발령이 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고, 그 내용인즉슨 진급자 공지였는데 스쳐 지나가면 몰랐겠지만 자세히 보니 특진 수준의 승격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OO , 현 직급  과장 , 승격 직급  부장'


 보통의 진급이라면 과장 다음은 차장인데 도대체 이런 진급은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해야지 가능할까 잠깐 생각해 봤다. 하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은 잠시일 수밖에 없었고, 그냥 그 진급 사건은 그렇게 내 기억에서도 멀어져서 잊힐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고, 이 일을 상기시킨 또 하나의 사건이 생겼다. 마스크가 한 참 부족하던 시절 인사팀도 아닌 모기업 A팀에서 메일이 수신되었고, 메일 내용을 본 나와 동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메일 본문의 내용은 계열사인 우리 회사 전 직원에게 KF94용 마스크를 개인별 5매씩 지급할 예정이니 각 부서별 대표자가 마스크를 수령해 가라는 메일이었다. 관리부서도 아닌 그것도 모기업의 일반부서 직원이 이리도 통 크게 마스크를 배포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한 건물에 있는 모기업의 계열사 직원들에게 모두 배포한다고 하니 어떻게 생긴 양반인가 궁금해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 여자 직원분의 정체(?)가 궁금했고, 모기업 A팀 '이 OO 부장'임을 알고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 바로 1~2달 전 인사 관련 공지(진급자 공지)의 바로 그녀였다. 남다른 포스와 배포에 혀를 내둘렀고, 나중에 들은 얘기였지만 그녀는 모기업 회장님의 외동딸이라는 사실을 듣고서는 그녀의 진급도, 배포도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드라마도 아니고 대기업도 아닌 우리 회사에도 이런 일이 있다니.


  '같은 사무 공간에 이런 일이... 회장님 딸이라니. 그나저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어찌 대할지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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