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Sep 07. 2020

저 마흔일곱인데요

어리게 봐주셔서 감사해야 하는 거죠?

"와? 그렇게 안돼 보이세요."


얼마 전에 진행 중인 업무로 협력기관 담당자와 두 번째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다. 갑자기 아들 녀석 이야기가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불쑥 업체 분이 물었다.


 "아드님이 고등학생이세요?"
 "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왜요?"
 "그럼 결혼을 일찍 하셨어요? "
 "그냥 적당한 시기에 했어요. 지금 저 마흔일곱인데요."
 "와? 그렇게 안돼 보이세요. 정말 젊어 보이시는데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동안이라는 말. 한참 젊었을 땐 의례 듣던 얘기였지만 남들은 듣기 좋아하던 그 말을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30대 중반까진 종종 듣던 이야기지만, 어릴 적 나이 때문에 마음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더 듣고 싶지 않은 말이 되었다.


난 7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소위 빠른 년생이다. 고등학교 땐 후배들이 뒤에서 쑥덕거리던 이야길 들었을 때도 있고, 대학교에선 재수했던 동기나 후배들과 주점에 갔을 때 주민등록증을 보여달라는 직원의 요청이 있을 땐 정말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이런 핸디캡을 앉고 살다 보니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는 동안이라는 말은 자연스레 듣기 싫은 말이 된 지 오래였다.  


제 나이가 안 들어 보이니 웃었던 기억도 있다. 결혼 후 집들이 때 팀장님이 아내와 날 유심히 보더니 한마디를 하셨고, 이 말에 동료, 선배들이 동의하며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 난다.


"김철수 씨 내외는 다 큰 성인이 결혼한 거 같이 않고, 애 둘이 소꿉놀이하는 거 같아. 아이코 재수 씨 미안해요."


나도 나지만 아내도 무척 동안이라 들을법한 이야기였다.


한참 영업들과 외근을 많이 다닐 때도 내 어려 보이는 외모는 그들과의 사적인 대화에 종종 편한 분위기 연출을 위한 영업들의 전략적 접근법 중 하니였다.


"저희 김 팀장님이 얼굴은 이래도 내일모레 마흔입니다."
"아, 그래요? 안 그래도 팀장 명함이라고 주셨는데 엄청 어려 보여서 초고속 승진하신 줄 알았네요."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자기들끼리 날 들었다 놨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잠자코 있는 날 맥이기까지 했다. 어쨌든 이런 일들이 자주 있다 보니 그 '동안'이라는 말이 얼마나 감사한 말인지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나이가 사십 대 초반을 훌쩍 넘기며 동안이란 이야긴 더 이상 내 얘기가 아닌 걸 깨달았다. 이제는 내 얼굴에서 동안이라는 표현에 적합한 구석을 찾기란 어렵다.  


눈가에 웃으면 자글자글 해지는 주름 하며, 입가에 생기는 팔자 주름은 얄밉게도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것 같다.  이마에도 어느새 내 천( 川 ) 주름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눈주름까지는 양보하는데, 이마에 주름 가면 이젠 같이 안 다녀요."


매몰차게 아내는 나의 늙어감을 거부한다. 세월아 야속해라.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유일한 내편인 아내와 계속 어울려 놀러 다니려면 더 이상의  급격한 노화는 막아봐야겠다.


그나저나 협력업체 직원이 이야기한 젊어 보인다는 얘긴 그냥 립서비스였을까  아니면 진심일까? 그래도 늙긴 했나 보다. 예전엔 어려 보인다고 하던 말이 젊어 보인다로 바뀌었으니. 바꿔 얘기하면 늙어 보이지는 않는다인가.

이전 08화 회장님 딸이라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