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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Dec 04. 2019

술은 뭐니 뭐니 해도 낮술이 최고?

직장인 백서, 개똥 같은 낮술 철학

술은 뭐니 뭐니 해도 낮술이 최고입니다.

낮술을 마시면 좋은 점이 참 많습니다.

그중 가장 좋은 점은 하루가 느리게 흘러간다는 겁니다.

 - 박광수의 [t 광수생각] 중에서 -


나는 전 직장을 다닐 때 가끔 낮술을 하곤 했다. 그 다지 높지 않은 직책(팀장)이었지만, 워낙 고생을 많이 하는 부서였고, 팀원도 제일 많았던 터라 팀장에게 부여되는 권리가 어느 정도 있었던 듯했다. 물론 바로 위 매니저의 신뢰가 많은 힘이 되었고, 대표이사 이하 많은 임원들도 어느 정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직원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내 입으로 이야기 하기는 뭐하지만 그때는 그랬었다.

  내 낮술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가끔씩 관리자인 부서 매니저와의 점심 식사에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매니저는 매번 을 시켰고, 술 때문인지, 아니면 서로 사람이 좋아서 그랬는지 매 식사자리가 편하고, 좋았었다. 관리자에게 좋은 점을 배우면 써먹어야 된다고, 나도 가끔은 조금 지쳐하는 팀원이나, 관심이 가는 팀원들과 가끔씩 따로 점심식사를 했고 이 식사 자리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이었다.

  사실 을  전혀 하지 못하는 직원들도 서로 무장해제하지 않은 입장에서 속내를 얘기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느 한쪽이라도 ''이 조금 들어가고, 알코올이 몸 구석구석 돌 때쯤 되면 을 마신 한쪽은 어느 정도 무기를 내려놓고, 무장해제할 준비를 하게 된다. 이때가 되면 아무리 서먹한 상사와 후임이라도 어느 정도 얘기를 꺼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이럴 때 이야기하는 솔직한 말들로 직장에서는 없을법한 의리와 의기투합 등이 생겨 나게 된다.

 


물론 이건 이성적인 생각과 사고가 이 ''이라는 녀석을 압도적으로 지배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술은 약간의 긴장 해소와 감성을 건드리는 정도여야 적당하다는 이야기다. 이래서 '낮술'은 유익한 점이 많다. 물론 비슷한 목적으로 저녁 술자리나 회식자리를 고려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하거나, 어떠한 소기의 목적도 달성할 수 없을 때도 있으니 저녁 술자리에는 이런 목적을 접고 술자리에만 집중하는 걸 권한다.

 저녁 술자리는 완전 무장해제를 의미하며, 이런 상태에서는 이성적인 생각과 사고가 술의 방해와 공격을 받아 어느 순간 감성 폭탄과 감정의 폭발로 완전 파괴될 수 있고, 오히려 그 자리가 끝나면 더욱 좋지 않은 결과에 놓여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부터 선배들 입에서 늘 술자리에서는 '공장(일) 이야기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입버릇처럼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분위기 정말 개떡 같아질 수 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어찌 되었건 팀원들과의 소통이라는 중차대한 목적을 빌미로 적당히 지위와 권리를 악용하며 낮술을 시작했다. 나의 낮술은 불과 3년 전까지도 계속돼 왔고, 무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팀원, 타 부서 후임, 관리자들과 낮술을 해오면서 여러 가지를 느끼고, 배웠다.  물론 지금은 팀이나 부서 매니저의 직책도 없고, 나이도 들고, 찾는 선임 관리자도 없어서 그런지 낮술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팀 매니저의 업무적 측면으로 팀원들의 고충을 편하게 이끌기 위해서 적절한 알코올을 활용하였고, 실제로 많은 좋은 사례들과 결과를 가져온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런 낮술은 조금 똑같은 일상에서의 짜릿한 일탈같이 활력소가 될 때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무실 근처에서 점심시간에 기울이는 술잔은 일종의 스릴을 넘어, 무언가 극도의 짜릿함까지 불러왔었다.


낮술의 또 다른 장점 중에 하나는 남들보다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을 버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적당히 기분 좋게 마시다 일어나도 해 떨어지기 전이라 이런 기분이 종종 들곤 한다. 물론 남들 일하고, 일상을 보낸 낮 반나절을 술을 마시느라 써버렸지만 내게 준 위로, 감사의 시간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라면 또 의미 있는 사람과 소중히 보낸 시간이라면 그 반나절이 다른 사람의 하루보다 값지고 소중할 것이다.  물론 일찍 끝난 만큼 일찍 귀가하여 조금 더 멀쩡한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생긴다.


 난 작년까지만 해도 출장이 잦았던 부서에 근무해서 당일 지방 출장이나 1박 2일과 같은 짧은 출장을 자주 다녔었다.  항상 일을 빨리 끝마치려고 애썼지만 매번 원하는 대로 업무가 끝나지는 않았다. 그러다 가끔 일찍 출장 복귀가 될 때, 서울로 복귀하는 KTX 안이나 혹은 출장지에서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을 때면 낮술을 마셨다. 그때는 그 술 한 잔이 나에게 주는 '감사 주'이자, '회복 주'였다. 출장 업무 하느라 수고했다는 선물이자, 짧은 일탈이었다.  

   낮술.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개인적으로 '낮술 = 자유'로 정의하고 싶다. 휴가 때면 휴가지에 가서 개인적으로 낮에 맥주 한 잔은 내가 늘 추구하는 루틴의 축이다. 휴가지에 가면 왠지 평소와 다른 일탈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 욕구가 끌어서 그런지 제일 손쉬운 일탈은 바로 낮술인 듯하다. 그래서 휴가지에서는 오른손엔 맥주, 왼손에는 가벼운 스낵은 기본. 휴가를 즐기는 좀 더 바람직한 방법도 많겠지만, 낮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일상에서 조금 벗어난 탈출구 정도로 생각하면, 얼마 들지 않는 작은 지출로 얻어지는 큰 기쁨이라는 생각에 아직까지는 포기하기가 어렵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낮술, 내게 주는 선물이어야 하지 내게 주는 병이자 독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술도, 세상사 모든 일도 적당히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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