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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억바라기 May 22. 2020

첫승진 요란했던 진급 턱

뚝배기가 뒤집혔는데 공짜밥이 넘어갑니까

직장에서 '철수 씨'라고 이름으로만 불리며 회사를 다니다 드디어 뒤에 직함이 붙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3년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대단하지도 않았고, 승진을 했다지만 작은 규모의 중소기업 벤처 회사라 승진 시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땐 처음 받는 '대리' 직함이 어찌나 좋았었던지 지금도 설레었던 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그래 봤자 아래로는 후임이 더 늘거나 처우가 크게  개선되지도 않았는데 그때엔 회사로부터 인정받는 직원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급여도 떳떳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맡고 있던 업무 자체가 외근이 많던 직군이었던 터라 처음 만나는 고객이나 협력업체 직원에게 명함을 건넬 때 왜 그리도 부끄러웠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조금 허탈한 웃음만 난다.


 회사에는 날 포함해서 입사동기가 세명 있었고, 우린 새로운 명함을 받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명함 교환을 했다. 동기들끼리 뭐가 그리 신기하고, 좋았었는지 남들이 불러주지 않는 직책을 서로 불러주며 승진의 기쁨을 자축이라도 하듯 장난치며 즐겼었다. 어차피 사무실에서야 3년이나 다니고, 직급이 바뀌었어도 막내의 위치가 바뀐 것은 아니어서 승진하고 꽤 오래동안은 차, 부장님들은 그냥 'XX 씨'라고 부르고는 했었다.  승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 전체가 점심을 함께 할 일이 있었고, 우리 팀은 회사 근처에 있는 뚝배기를 잘하는 식당에 갔다. 그 집은 뚝배기 순두부, 김치찌개 등으로 그 주변 회사를 다니는 셀러리맨들에게는 꽤나 입소문이 난 집이었다. 우린 방으로 들어갔고, 큰 방 안에는 테이블이 비어있지 않을 정도로 점심시간을 즐기기 위한 직장인들로 붐볐다.


 우린 9명이나 되는 부서원들이 앉으려고 하다 보니 방문을 열면 바로 있는 통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고, 다들 앉자마자 주문들을 읊었고, 동기 한 명이 열심히 메모해서 홀에 있는 아주머니께 주문지를 전달했다. 난 즐겨먹는 김치찌개를 골랐고, 방 안을 가득 메운 찌게 냄새에 안 그래도 허기진 배가 요동을 치는 것을 느끼며 음식을 기다렸다.


 "철수하고, 길동이는 언제 진급 턱 낼 거야? 진급 턱 내야 정식으로 승진하는 거 알지?"

 "하하, 과장님이 사주셔야죠. 대리 월급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오른다고요."

 "그럼, 제대로 승진 턱 내기 전에는 그냥 니들은 대리 대행쯤으로 부르련다. 크크."


 부서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고, 어차피 웃자고 하는 말들이어서 우린 서로 부담 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곧 나올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등 뒤로 문이 열렸고, 뚝배기를 잔뜩 실은 쟁반이 아주머니 음식 운반용 밀차에 실려 있었다. 아주머니가 뚝배기를 하나씩 옮겨가던 찰나 반대편에서 들어오던 손님이 미닫이 문을 밀었고, 이내 뚝배기를 들이밀던 아주머니의 손님이 밀던 문은 충돌을 하고 말았다. 이 충돌로 손에 있던 뚝배기는 아래로 떨어졌고, 바닥에 떨어지며 쏟아진 뜨거운 국물은 이내 문 앞자리에 있는 내 허벅지를 덮쳤다. 참고로 사고의 발단이 된 미닫이 문은 옛날 한옥 마루에 있는 미닫이 문이었다.


 "아아~ 아 뜨거워!!!"

 난 허벅지 위가 화끈대는 순간을 그대로 느꼈고, 이내 머릿속은 두뇌 회전이 정지된냥 머리는 몸에게 뭐부터 해야 할지 아무 명령도 내리지 못했다.

 "에고 머니나, 이를 어째. 총각 얼른 바지부터 벗어요."

 이내 급하게 바지부터 벗었고, 이 순간적인 참사 후에 잠깐 주위를 보니 그 홀 안에는 꽤나 많은 여자 직원들이 있음을 느꼈다. 순간적이었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은 내 몫이었고 떨어진 국물을 급하게 닦고 나서 입고 왔던 재킷으로 급하게 아래를 재정비했다. 급하게 식당 직원 한 분이 화상연고와 거즈를 사 와 응급조치를 했고, 바닥을 한 번 튄 국물이 허벅지에 닿아 생각보다 심하게 화상을 입지는 않았다. 식사는 정상적으로 다시 나왔고, 다들 식사가 끝났을 때 사장님이 오셔서 거듭 사과를 하셨다.

 "죄송해요. 혹시나 병원비 청구하시면 저희가 지불할 테니 편하게 치료하고 연락 줘요. 그리고, 바지 세탁비는 드릴게요."

 "아... 아닙니다. 그냥 두세요. 그리고 혹시나 심해지면 병원은 갈 텐데 지금 봐서는 치료 연고로도 잘 아물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 테이블 밥 값은 안 내셔도 됩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아... 그러실 필요까지는. 암튼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날 식당을 나오면서 함께 식사했던 선배들은 내게 '철수야', '철수 씨'가 아닌 '김 대리', '철수 대리' 등으로 호칭을 바꿨고, 어찌 되었건 진급 턱은 낸 것이니 따로 밥 안 사도 된다고 장난들을 쳤다. 물론 회사에 와서 병원을 가라는 둥, 흉 지면 어떡하냐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진심 어린 걱정을 했다.


 "정말 돈이 궁했나 보다. 선배들 미안하게, 몸으로 때워 밥을 사냐. 김 대리 무섭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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