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억바라기 Mar 03. 2020

50번의 입사지원, 누구에게나 길은 있더라

나의 취업 그리고 이직 스토리(1)

나는 이십일 년 차 직장인이다. 20년을 쭈욱 한 곳에 직장을 다닐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이렇게 자주 이직을 할 거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첫 직장 포함 경력 기술서에 기재된 회사의 숫자만 해도 다섯 곳, 길게는 8년에서 짧게는 3개월까지 다양한 이유로 회사를 옮겼고, 비슷한 듯 다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나의 첫 직장은 IT 관련 NI(Network Integration), 네트워크 통합 컨설팅, 구축 유지보수를 하는 중소기업이었다. 나는 군대를 다녀와 2학년 복학 후 취업이라는 걱정을 구체적으로 해보지는 않으며 3학년까지 대학 생활을 나름 재미있게 보냈다. 소위 요즘 이야기하는 취준생들의 걱정보다는 그때 당시의 대학 생활에 충실하게 보냈었던 것 같다. 막상 4학년이 되고서야 취업에 대한 고민을 했고, 졸업을 위한 준비와 취업으로 분주한 날들을 보냈지만 그래도 서울에 있는 4년 제라는 허울만 있는 울타리를 너무 믿고 여름방학을 보냈고, 막상 4학년 2학기가 되고서야 현실 앞에 서게 되었다.


  9월부터 자기소개서를 준비했고, 대기업부터 열심히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고 자기소개서를 넣기 시작했다. 11월까지만 해도 회사를 가려서 지원했지만, 졸업논문도 끝나고 정작 12월이 되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대졸자 신입사원 공채를 뽑는 곳에는 조건이 많이 나쁘지 않은 선에서 무작위로 넣기 시작했고, 첫 직장에 입사 전까지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50곳은 족히 넣은 듯하다. 그중에 1차에서 대부분 떨어졌지만, 2차나 면접까지 간 곳도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첫 직장을 입사하는 게 가장 어려웠을 정도였다. 사실 첫 회사의 면접은 어떻게 봤었는지도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막연히 대학 3, 4학년 때 들었던 데이터 통신 과목이 재미있어서 취업은 네트워크 구축, 컨설팅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는 회사를 찾게 되었고, 컴퓨터를 잘 다루지도 못했던 내가 이런 IT기업에, 네트워크 장비를 설치하고, 컨설팅하는 업무 등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이렇게 입사한 첫 회사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까지 IT 관련 일을 하면서 네트워크 관련 업무가 나올 때마다 막힘없이 리딩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고마운 회사이다.  이렇게 열심히 다녔던 회사도 결국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도 떠나고, 나름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한 직장에서 보내다 보니 다른 직장이 궁금하기도 했고, 가끔씩 만나는 대학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박봉이었던 내 급여가 어느 순간부터 아쉬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렇게 조금씩 이직의 마음을 싹 틔울 때쯤 꽤나 규모가 있는 중견 기업(제조사) 인사팀에서 직접 면접 제의가 왔고, 이렇게 취업 후 처음 접하는 면접 자리에서 5 년간의 업무 이력과 나의 열정, 포부를 쏟아내며 5년 만의 인터뷰 치고는 스스로를 대견해할 정도의 인터뷰를 봤고, 면접 다음 날 바로 대표이사 인터뷰 없이 채용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연봉도 다니던 회사의 최종 연봉에 20퍼센트 인상을 제시받으며, 당당히 입사를 결정했다. 하지만 크게 기대하고 들어갔던 회사의 업무나 스타일이 기존 업무와는 전혀 다른 업무 환경, 기업 문화임을 알았고, 적응을 위한 노력보다 다른 회사 이직이 나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개월 만에 박차고 나왔으니 나에게는 경력에 기술하기도, 회사 네임 밸류만 보면 빼기도 뭐한 계륵 같은 직장으로 기억된다. 사실 처음부터 연봉 인상 20퍼센트에 너무 들뜬 나머지 다른 고려사항들에 대한 체크를 게을리했고, 결정적으로 이직한 회사 매니저와는 절대 함께 하기가 어려울 듯했고, 5년을 필드로 다니던 내가 연구소에 하루 종일 처박혀 있는다는 게 너무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이렇게 짧은 두 번째 직장 생활을 접고, 옮겨간 회사가 분당 끝자락에 있는 회사였고, 첫 직장 선배의 내민 손을 덥석 잡으며 하루의 고민도 없이 이직을 결정한 회사다. 회사는 중견기업이었고, 우리나라 굴지의 통신회사의 협력사여서 규모와 매출만 보고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이직을 결심했던 것 같다. 인터뷰도 선배가 면접관이었으니 떨어질 거라는 우려는 전혀 없었던 듯하다. 당연히 입사 결정이 나서 출근을 하긴 했지만, 첫 직장과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첫 달은 의욕적으로 일을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신설부서의 아픔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주력부서가 아닌 외인부대라서 그러는지 회사에서 기존 부서 매출 대비 비교를 하며 압박하기 시작했고, 결국 처음에 계획했던 사업들이 없어지거나, 수주 실패를 거듭하자 부서의 업무와는 상관없는 IDC(Internet Data Center) 이전사업에 지원을 나가는 일이나, 단순히 인프라 운영 등에 업무가 주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답답하긴 했지만 다시 기회를 보자며 서로 의기투합해 버텨봤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부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파견 나가면 한 두 달안에 부서 복귀도 어려웠고, 이런 업무가 잦아지면서 소속감마저 없어져갔다. 안 그래도 집에서 출퇴근 거리도 멀어서 고민을 하던 터라 길게 고민하지 않고, 세 번째 직장으로 이직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6년밖에 되지 않은 시간에 세 곳의 직장을 다니며 짧지만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이직을 위한 기준을 세우게 된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처음 단추를 꾀는 데는 어려움이 많아서 그랬는지 자리는 어느 곳에도 없을 줄만 알았고, 늦어지는 취업 때문에 많은 조바심을 가지며 처음을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잘 찾아보면 있기 마련이다.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것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과정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물론 처음 시작이건, 이직이건 간에 신중한 선택은 중요하다. 잦은 이직은 오히려 다음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전 01화 프로에게도 아마추어 시절은 있었다(Prologu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