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보내게 된 이유
책을 읽지 않는 너에게.
짹짹거리는 소리가 귀를 두드리기 시작하고 아침 햇빛이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내 눈에 내려왔을 때, 그렇게 평일이라면 지각임을 깨닫고 화들짝 놀랄 시간에 어느새 다가온 추운 날씨를 이겨내려 꺼낸 두꺼운 이불을 잔뜩 목까지 끌어올린 채, 문득 고개를 돌리고 나의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문득 두려워 발끝에 슬그머니 힘을 주어 나의 몸에 작은 시동을 걸고 예전의 조심스러움을 잃어버린 채고 벌떡 일어나 한참을 내 눈에 빛을 쏘아내는 창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어.
마실 거 좀 가져다 주라며 투덜거리던 너를 생각하면서 어쩌면 정말 마실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네가 나를 찾아내려고 아침마다 나에게 말을 걸었었는지를 다시 고민하면서 벌써 일주일째 타지 않은 침대 옆의 실내용 자전거에 힘을 실어 몸을 침대 밖으로 꺼내고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시러 냉장고를 찾아 떠났어. 어제저녁에 집에 들고 온 책이 덩그렇게 식탁 위에 올려져 있어서 피식하고 책을 한번 더 쳐다보았다가 문득 어제저녁이 생각이 났어.
네가 내 옆에 없어지고 나서 나도 조금 멀리했던 책을 다시 가까이 두기 시작한 이유는 또다시 사람이었어. 손이 잘 가지 않던 책을 조용한 곳에서 읽게 된 이유는 그저 나에게 그런 공간과 시간이 필요해서였나 봐. 책이 준비되어 있는 공간에 방문하고,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하고, 어색하게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그래, 그랬는데 어느새 흥미로운 책을 읽고 나서, 일면식도 없던 옆사람과 책의 주인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는 집에 가는 시간이 너무 일찍 돌아와서 아쉬워하는 스스로에게 깜짝 놀라던 어제의 저녁은 나에게는 꽤나 충격이었거든.
함께 어떤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것이 추억이라면, 꼭 그 이야기가 우리가 직접 겪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는 소설을 읽고 거기 안에 잇는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했고, 공유한 이야기는 어느새 마치 추억처럼 이런저런 우리가 잊은 부분과 우리가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꺼내어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되었거든. 어제저녁에 읽은 책은 과거의 이야기였고, 꽤나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야기였어.
문득 이런 이야기를 너에게 전해주면 넌 뭐라고 할까 고민을 해보게 돼. 언제나처럼 나라면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볼까? 아니면 넌 그러지 마라고 날 다독여 줄까. 그것도 아니라면 드디어 수없이 시도해온 나의 이 책 한번 읽어 볼래?라는 질문에 좋다고 답변을 해줄지도 몰라. 함께 책을 읽은 모임원들 모두 정말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라는 것에는 동의했거든.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게 느껴질 때마다, 어제저녁의 재밌었던 기억을 조금씩 되새기면서 책을 읽지 않는 너에게 편지를 보내주어야 하지 않을까. 책은 읽지 않지만 나의 편지는 언제나 꼼꼼히 두 번, 세 번이나 읽어, 나도 잊어버린 나의 문장을 나의 심장에 되돌려 주던 너에게, 그런 너의 아름다움이 되어 주려면 편지를 보내주어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책임감이 샘솟기 시작한 거지.
그래서 이렇게 너에게 허락을 받으려고 해. 너에게 내가 읽을, 그리고 읽은, 수많은 책들을 소개하고 나의 생각을 너에게 물어보고자 하는 이런 나의 결단을 네가 응원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너에게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사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야.
마치 습관처럼 언제나 지루하다며 재미있는 이야기 없냐면서 눈을 반짝이며 묻던 너의 눈에는 무언가가 빛나는 듯했었는데, 그 별빛을 담은 눈에 호응하고 싶어 내가 꽤나 열심히 너 몰래 책을 읽고, 그 이야기를 네가 좋아할 수 있도록 더 흥미롭게 각색해서 들려주면 그 눈 안의 별들이 나에게 쏟아지는 듯했던, 그런 과거의 너를 바라진 않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내가 편지를 허락받기 위해 이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그래.
책을 읽지 않는 네가. 책을 읽고 나와 함께 웃으며 대화하게 되기를. 그렇게 너의 별빛이 아침의 새소리와, 창을 뚫고 쏟아진 햇빛보다 나를 더 많이 깨워주기를 바라기 때문일 거야.
답변 기다릴게. 너무 놀라지 않기를 바라며. 이시백 보냄.
ps. 너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첫 책의 힌트를 함께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