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너에게 #1

소년이 온다 - 한강

by 이시백

아득한 문장과 지독한 마음



내가 너에게 언젠가 내가 읽은 책을 나른하게 나열하고, 너는 그 이야기를 심드렁 하게 듣다가도, 네가 관심있는 부분에서는 그래서 왜 그랬는지를 꼬치꼬치 캐묻곤 해서, 사실은 책에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수없이 상상하고 고민해서 너를 납득하게 만들어 내야했던 어느날의 저녁처럼, 그렇게 너에게 오늘도 하나의 책을 읽어서 이야기 해주려고해. 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읽어내는게 꽤나 힘들고 스스로를 돌아보게만 만드는 그런 책이었기에 네가 한번쯤 읽으며 아파하기를 바라고, 네가 한번도 읽지 않아서 모르지는 않기를 바라는 모순적인 마음에, 그냥 그렇게 언제나처럼 나는 나른하게 너에게 다시 단어를 나열하려고 해.



"소년이 온다-한강"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옴니버스 식의 문학으로 표현해 내는 이야기야. 그 사건이 개인에게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를 통해서 우리에게 그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그리고 그 아픔을 겪은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전달해 주는 이야기들을 그 담담한 글자들로 수없이 나열해 두었는데....... 알수없는 먹먹함과, 막연한 공포, 그리고 슬픔이 나를 가득 채운 것 같은 기분을 수도 없이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어.



책을 읽는데는 1주일이 걸렸어. 열었다 덮었다를 반복해야만 해서, 한번에 이 책을 다 읽어내지 못해서, 그래서 너무 오래 걸렸어. 정작 읽는데 걸리느 시간은 채 네시간 정도 뿐이었는데도, 그 네시간이 너무 힘들어서 이어갈 수가 없었어. 작가분들이 쓰는 문장을 일개 독자인 내가 평가내리는 것도 우습지만, 독자로서의 권리라고 생각하고, 노벨상 수상자의 문장을 평가하자면. 이보다 아득한 문체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 이야기는 내가 생가하던 것보다 조금 더 깊고,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조금더 어두워서, 아니, 그렇게 어둡고 깊은게 우리가 마주봐야 하는 현실이라서, 그래서 한강 작가님의 문장은 나에게는 아득했어. 내가 가지고 있던 내 안의 두려움이 눈앞에 드러나서,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현실이 무너져 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뚜렸해서. 그리고 그 모든 글들이 현실에 기반을 두엇다는 사실이, 그보다 더한 일도 일어났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문장을 아득하게 만들었어.



놀랍게도 내가 이 책을 한참 읽는 중에, 비상 계엄령이 내렸었어. 그 비상 계엄령이 내린 날, 읽던 책을 덮고, 나는 나라에 분개하기에 앞서서, 슬그머니 올라오는 공포감에 당황스러웠어. 우리 사회는 그때와 무엇이 바뀌었을까. 시민들이 여의도로 나가서 군인들을 제지하는 모습을 보고, 읽다가 내려놓은 책을 만지작 거리면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굳은 채로 한참을 화면너머를 바라보는 겁먹은 나의 모습에 실망하며 잠들었던 저녁이 있었어. 우린 그때와 지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그날, 죽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우리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들과, 그들을 위해 하늘에 발포하고, 끝내 군가를 외치지 않은 누군가, 그리고 마침내 그 아픔에 대해 반복해서 고민하는 우리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거야.



분노에 쌓인 사람이 묵묵히 자신의 심정을 나열하다 못해 언젠가 터져버릴 것만 같은, 그런 심정으로 책을 넘기다가 문득 몇가지 문장의 앞에서 멈춰서 한참을 반복해서 읽게 되는 문장들이 있었고, 그걸 이 편지에 담아서 보내.






- 36P -


어두워지는 텅 빈 방 가운데 서서 너는 마른 눈두덩을 손등으로 비볐다. 뜨겁게 살이 일어날 때까지 비볐다. 정대의 책상 앞에 앉아 보았다가, 차강누 방바닥에 얼굻을 대고 엎드렸다. 고통이 느껴지는 가슴뼈 가운데 오목한 곳을 주먹으로 눌렀다.



-79P-


거칠게 꿰매어진 문장들, 문단째로 검게 지워진 자리들, 우연히 형상을 드러낸 단어들을 그녀는 생각한다. 당신을. 나는. 그것은. 아마도. 바로. 우리들의. 모든 것이. 당신은. 어째서. 바라봅니다. 당신의 눈은.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그것은. 또렷이. 지금. 좀더. 희미하게. 왜 당신은. 기억했습니까. 숯이 된 문장과 문장들 사이에서 그녀는 숨을 몰아쉰다.


Adobe Genetative AI


-130P-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는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엇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 이었단 걸 증명한거야.






-162P-


눈이 작은데 예뻐요, 라고 그는 처음에 말했다. 그쪽 얼굴을 그리려면 단순한 선 몇개만 그으면 되겠네요. 기 눈하고 코하고 입하고, 흰 종이에 쓱쓱 정갈하게. 송아지처럼 크고 물기가 많던 그의 눈을 당신은 기억한다. 입술이 일그러지던 모습을, 흰자위가 충혈된 채 물끄러미 당신을 마주 보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러지 마, 라고 그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다.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날 보지 마.




언젠가 네가 이 책을 읽고나서 나에게 물어볼 질문들을 고민해 보기도 했어.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 나는 너무도 자주 봐오던, 아직도 그날의 혈흔이, 그날의 탄환이 남아있는 시청을 직접 본적이 있는지, 그날의 아픔이 아직도 고향사람들에게는 생생한지, 그리고 그런 아픔 속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할지, 그런 것들을 잔뜩 재잘재잘 물어볼 너에게. 그래. 그렇게 나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차갑고 매섭지만, 깨지기 쉬운 유리같은 심장을 가진 나에게 나의 심장이 유리이니 조심하라고 웃으며 인사하던 너에게. 이 편지를 보내.


찬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붉어진 뺨을 훑기 시작하는 입깁이 일어나는 여느 겨울의 푸른 저녁에.


시백. 오인재. 보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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