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너에게 #2

라틴어 수업 _한동일

by 이시백

언어라는 생각의 틀에 대하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나의 언어를 가졌다는 사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어린시절을 지나, 어느새 우리나라의 말이 꽤나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른이 되고나서야 뒤늦게, 꽤나 대단한 것이 아닌 위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는 과정에서 문득 너와의 옛날 이야기가 생각났어.


나 > 지혜야, 이쁜말이라는게 뭘까?
너 > 글쎄, 가끔 왜 그런말 할 때 있잖아, 너가 나보고 이쁘다고 해줄 때?
나 > 이쁘다고하면 그게 이쁜말이야? (하하)
너 > (하하) 아니, 그냥 그 말이 좋아서~. 이쁜말이라… 아마 이쁜말은 그런거 아닐까? 너처럼 조금 느긋한
한량이 나같은 사람을 보고, 아무렇지 않게 무수한 단어를 쏟아낼 수 있는 말?


아, 그때 나는 너가 꽤나 흥미로워 보였어. 언젠가 나에게 말을 글만큼만 이쁘게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물음에 어떻게 해야 이쁜 글인지, 한참을 고민하던 나에게 마치 내가 나아가야할 길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거든. 그래 이쁜말은 그런 말일거야. 그냥 아무렇지 않게 무수한 단어를 쏟아내어도,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잇는 말. 그리고 그 무수한 단어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문장을 가진 우리 글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어.


그때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번에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읽어서야.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언어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부하는 언어가 라틴어야. 이 라틴어가 아직도 세상에 남아있고, 여기저기에서 그 흔적이 드러나는 이유가 궁금했고, 사라져 버린 언어를 아직도 공부하는 사람이 된다는 알수 없는 매력에 가득차서 책을 읽었어. 물론 종종 편지를 손으로 쓰는걸 즐기는 나에게는 흘림체로 써진 라틴어의 매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진 모르겠지만, 깃펜으로 써진 한줄의 글은 꽤나 매력적이거든.


이 책은 라틴어를 가르쳐 주는 책이지만, 동시에 내용을 보면 알수 있겠지만 사실 몇줄의 라틴어보다, 라틴어에서부터 나오는 그들의 사상이나 생각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책이야. 옛날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문장을 만들어 냈는지, 그렇게 만들어진 문장들에 숨겨져 있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면 알 수록, 이 라틴어라는 글이 어떻게 오랫동안 유지되고 아직도 연구되는 언어인지를 알 수 있었어. 네가 했던 이쁜말이라는 뜻이 어울리는 글이기도 해.


아무렇지 않은 듯한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는 문장들이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될 때마다, 꽤나 놀라웠는데, 그 글을 아래에 조금 써서 보내줄게.




63P -


Postquam nave flumen transiit, navis relinquenda est in flumine.

(강을 건너고 나면 배는 강에 두고 가야 한다)

[나의 장점이 단점이 되고, 너의 단점이 장점이 되는 순간, 그 순간을 나는 언제나 사랑했어. 너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으니까]

79P-


Do ut des

(네가 주니까 내가 준다)

[ 아무것도 준게 없는데 왜 자꾸 선물을 주냐는 너의 물음에 무심코 대답했던게 생각나, 널 줬는데, 내가 바랄게 뭐가 더 있었겠어.]

130P-


Post coitum omne animal triste est.

(모든 동물은 성교(결합) 후에 우울하다)

[요즘엔 엔제나 네게 편지를 보내고 나서 일시적인 우울을 겪는 중이야. 마치 너에게 하나의 사명을 이루어 낸 듯한 순간에 찾아오는 짧은 우울함은, 나의 최선이 이런 방법이어서 아닐까.]

218P-


Desidero ergo sum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네가 나의 편지를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언제나 편지를 보내,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은연중에 묻어나는 문장들에, 그리고 단순하지만은 않은 노곤함에 네가… ]




우리가 쓰는 수많은 언어들로 인해 우리의 세상이 규정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적이 있어. 그렇게 우리의 삶은 우리가 아는 단어만큼만 보이는 거지. 그래서 어딘가의 인디언 족이 쓴다는 신비로운 단어들을 들으며 그 문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끔 상상하기도하고, 이번에 라틴어 수업을 들으며 라틴어를 쓰던 사람들이 얼마나, 철학에 진심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야. 다음에 너와 마주칠 일이 있다면 꼭 그렇게 할게. 너의 언어로 너에게 첫 문장을 떼기 위해 노력할게.


잘 지냈어? 기다린 시간이 너무 지루하진 않았길 바래. 언제나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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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지 않게된 계절에, 산타가 되고 싶은

시백. 오인재. 보냄.


ps. 다음 책에 대한 힌트를 동봉해서 보내.

"Mornig and Night" Generated by Adobe AI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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