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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희쌤 Dec 19. 2024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간서치(看書痴)란?

‘책만 보는 바보’를 일컬어 간서치(看書痴)라고 합니다. 독서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이덕무는 그의 문집 청장관전서에 「간서치전」이라는 자서전을 쓰고, 스스로 이와 같은 별명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목멱산(木覓山 남산의 별칭) 아래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살았는데, 어눌(語訥)하여 말을 잘하지 못하였으며, 성격이 졸렬하고 게을러 시무(時務)를 알지 못하고, 바둑이나 장기는 더욱 알지 못하였다. 남들이 욕을 하여도 변명하지 않고, 칭찬을 하여도 자긍(自矜)하지 않고 오직 책보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아 추위나 더위나 배고픔을 전연 알지 못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21세가 되기까지 일찍이 하루도 고서(古書)를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방은 매우 적었다. 그러나 동창ㆍ남창ㆍ서창이 있어 동쪽 서쪽으로 해를 따라 밝은 데에서 책을 보았다. 보지 못한 책을 보면 문득 기뻐서 웃으니, 집안 사람들은 그의 웃음을 보면 기이한 책[奇書]을 구한 것을 알았다.
자미(子美 두보(杜甫)의 자)의 오언율시(五言律詩)를 더욱 좋아하여 앓는 사람처럼 웅얼거리고, 깊이 생각하다가 심오한 뜻을 깨우치면 매우 기뻐서 일어나 주선(周旋 왔다 갔다 걸어다니는 것)하는데 그 소리가 마치 갈가마귀가 짖는 듯하였다. 혹은 조용히 아무 소리도 없이 눈을 크게 뜨고 멀거니 보기도 하고, 혹은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하니, 사람들이 지목하여 간서치(看書痴 책만 보는 바보)라 하여도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의 전기(傳記)를 써 주는 사람이 없기에 붓을 들어 그 일을 써서 ‘간서치전 (看書痴傳)’을 만들고 그의 성명은 기록하지 않는다.   - 실학박물관 홈페이지 -


'청정서옥이라 불리던 서재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나는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등을 보이며 가지런히 꽃혀 있는 책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를 향해 눈길을 돌리는 것만 같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책속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마주치는 설렘

오래된 책들에 스며있는 은은한 묵향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주고 보풀이 인 낡은 책장들은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아니 스스로 나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내 손이 책들을 뽑아 드는것이 아니라 방문을 여는 순간 내 얼굴빛과 표정으로 마음을 미루어 짐작한 책들이 스스로 몸을 움직여 다가오는 것만 같다  - 책의 서문 이야기 시작 중에서 - '


서문을 읽으면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느낌을 갖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도서관에 가면 서가에 꽃혀 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면서 마치 책들이 나를 선택해 달라고 하는것 같고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설레기도 합니다 책을 골라 편안한 자리에 앉아 읽다가 어느 순간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만 이 또한 좋습니다  책에 둘러싸인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좋아합니다


'책만 보는 바보'는 스스로 간서치라 불리는걸 좋아한 이덕무, 그의 벗들(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이서구), 스승(홍대용, 박지원)의 이야기입니다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관직에 나가는것도, 장사를 하는것도 할 수 없는 그 한을 책으로 달랬을것입니다

서른살이 넘어서야 정조 시대에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관직을 얻고 먹을것도 입을것도 넉넉하지 않은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뜻을 펼쳤습니다 책속에만 머물지 않았던것입니다

이덕무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가난과 추위, 굶주림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을 책으로 승화시키고 벗들과 마음을 나누고 스승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묵묵히 견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검서관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게되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덕무의 외로움과 고난이 나에게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이덕무의 외로움과 힘듦을 보면서 나의 힒듬과 비교하니 나의 힘듦은 견딜만합니다

이덕무가 관직을 얻어 이제야 가족들에게 가장으로서 면목이 설 때는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러면서 나도 이덕무가 책을 읽으며 모진 세월 견딘것처럼 나도 내가 하는 일이 당장의 성과가 없어 포기하고 싶지만 견디고 꾸준히 하면 내가 원하는 성공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위로를 받습니다


책 속의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살아라' 알려주고 스스로 보여주고 해답을 알려줍니다

책을 통해서 옛사람과 내가 시간을 나눌 수 있다는 이덕무의 말처럼 나도 이덕무의 벗이 되었습니다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반드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옛사람들로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을 나누어 받기도 한다 옛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이 오롯이 담겨있는 책들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나도 옛사람들에게 나의 시간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그들의 소망이 나의 삶속에서 이루어진게 있다면 옛사람들은 그 만큼의 시간을 더 살아가고 있는것이다
그보다 먼 훗날의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누군가 나의 마음속에 스며들어와 나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시간을 나눌 수 있다 옛사람과 우리가, 우리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는 벗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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