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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언니 Jul 17. 2019

이혼하기로 결정했다면

노력했지만 관계 회복에 실패했을 때

살아 있는 동안
너는 나만 사랑한다고 
나는 너만 사랑한다고
맹세할 때 

난 신이 가장 무서운 존재인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건 
사람 마음이야

신앞에서 한 맹세도 
마음 한번 바꿔 먹으니까 
아무것도 아니잖아

- 드라마 거짓말 중에서 -



양가 하객들과 친구들을 모셔놓고 '우리 앞으로 잘살겠다'라고 했던 맹세도 

살다 보면 흐려지고, 잊히고, 그리하여 결국엔 내가 그런 말을 언제 했냐는 듯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모든 부부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고비 없이 살아가는 사이가 어디 있겠는가


싸우기도 하고, 달래기도 해 보고, 사과도 해봤다가 하소연도 해보고 갖은 노력을 다 해보고 그럼에도 회복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 때 우리는 "이혼"을 생각하게 된다.


나는 종종 이혼에 대해 묻는 지인들이게 마지막까지도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금 더 노력해보고 후회 없이 노력했다 싶을 때 결정하라고 늘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결론이 같다면 미련 없이 돌아서라고...


나 또한 이혼을 결정했을 때 여러 가지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언젠간 내가 반드시 이혼을 하고 말겠다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내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혼의 유, 불리를 체크하고 협의이혼과 재판이혼의 두 가지 가능성을 두고 최악의 경우 재판으로 갈 경우를 대비해 매일 일기를 쓰고 기록을 하고 증거를 모았었다.

(물론 협의이혼으로 끝났기에 그 증거들은 세상밖에 나오지 못했고 아직도 나의 전 남편은 내가 꽤 오랜 기간 그런 증거들을 모으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동시에 한편으론 이 사람이 혹여 이제라도 정신 차려 나아지지 않을까?

기적처럼 우리가 눈물로 화해를 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그 마지막 카드를 차곡차곡 쌓기만 할 뿐 내놓지 않았었다.


기대가 무너지고 실망이 쌓이며 난 이혼을 준비했다.

1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반드시 내가 이혼하고 말 꺼라고 생각하고 천천히 준비를 해나갔다


이혼하기로 결정을 했다면 


협의 이혼을 할 것인가? 재판이혼을 할 것인가? 를 선택해야 한다


부부 당사자가 이혼에 합의가 된 상태라면 고민 없이 "협의이혼"을 신청할 수 있다.

물론 이혼에만 합의를 했을 뿐 재산분할, 양육권, 친권 등의 문제는 역시 부부 당사자들의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


비교적 원만할 거라고 생각하는 합의 이혼에도 분명 갈등과 진흙탕은 존재한다.

하다못해 그릇 하나까지도 네 거 내 것 가르게 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같이 붓고 있던 적금도 당장 해약해서 1/N로 나누자고 하게 되기도 한다.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이혼 판결까지 받고서도 TV를 왜 주겠다고 하고는 말을 바꾸냐고 구청 앞에서 싸우는 이혼 동기들도 봤다.


말 그대로 "이혼만 합의"한 상황이다.


나의 경우는 전남편 씨께서 워낙 이혼을 서둘러 진행하고 싶어 하셔서 나로선 다행이게도 내가 원했던 중요한 조건들은 확보할 수 있었다.


양육권과 아이와 함께 살 집. 


양육권은 스스로 자신이 없다며 포기하셨고 (겉으론 날 위해 양보한다고 개수작을 부렸지만 네가 자유롭고 싶어서였던 걸 모를 리 없다 전남편아!)


집은 남은 대출을 내가 앞으로 갚아 나가야 하니 이사온지 2년여밖에 안 된 집이 대출 갚고 나면 뭐가 남겠나

(대출이 70%였고 그 대출은 나 혼자서 갚아 나가고 있으니 집을 줬다고 말할 순 없다.)

결국 재산분할을 덜 하는 대신에(재산분할을 위해 집을 팔면 당장 아들과 살곳이 막막했다) 해당하는 금액은 양육비 일시불로 받은 걸로 치기로 했다.

줄지 안 줄지도 모를 양육비 때문에 맘고생하는 것보다는 이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집에 묶여있는 양육비 일시불 준걸로 퉁치기로 한 금액을 제외한 차액은 내가 10년여를 근무하는 동안 모였을 퇴직금을 정산받아 계좌이체시켜주고 진지한 궁서체로 "이혼 재산분할금"이라고 박아줬다.


그가 타고 있던 차는 전남편이 가져가기로 했다.

법적으론 각자의 퇴직금도 재산분할 대상이라 나보다 2배나 많은 그의 퇴직금도 재산분할에 포함해야 했지만 그거 먹고 꼭 자기 같은 여자 만나길 축복하는 마음으로 쿨하게 포기했다.



통상 협의 이혼에선 양육권, 친권, 재산분할만 결정해줄 뿐 이 외에 부분은 아무것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

위자료 등도 당사자간 합의는 할지언정 협의이혼 이행사항은 아니다.

(특별히 재산분할에 위자료까지 포함하면 모를까...)


사람이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이 다르듯 

이혼 진행을 할 때는 진흙탕 싸움만은 피하자고 서로 양보해주마 약속하며 진행했어도

이혼 판결받고 이혼신고까지 마쳤어도  당장 다음날부터 자기가 손해 본 기분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장 나쁜 건 주위에서 왜 그런 조건에 이혼을 했냐고 들쑤시는 지인들이다

재산분할을 안 해줘도 되는데 해줬다

양육비를 너무 많이 책정해준 거 아니냐 등...


(자기들이 이혼할 때나 잘했으면 좋겠다

이미 혼란스러운 사람들 흔들지 말고...)


사람 마음은 늘 변한다 

지금 당장 이혼하고 싶은 마음에 양보하겠다 배려하겠다 말했어도 협의 이혼하고 나면 아무 의미가 없다

법원은 협의 이혼서에 작성한 내용만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나 또한 전 배우자의 변심을 확신했고 그 마음은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합의서"를 쓰고 싶었는데 감정 건드리지 않기 위해(이혼을 취소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ㅋㅋㅋ) 타이밍만 보고 있었는데 그가 먼저 합의서를 작성하자고 하는 바람에 미리 나로선 YES!!! 를 외치며 당장 작성했다.


사람의 마음은 아무도 장담 못한다. 서류만이 기억할 뿐.


각자의 합의사항들을 적고 신상명세를 적고 지장을 날인해서 한 장씩 나눠가졌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친정식구들과 합가 하지 않는 조건도 넣는 아주 꼼꼼하도록 치밀한 사람이었다.


합의서 작성을 하고 지장을 찍었음에도 이혼 신고를 한 지 2달이 되기 전에 그는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재산분할이 덜된 것 같다, 양육비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앰병 애 학원비 정도밖에 안돼도 내가  감당 하마 다짐하며 합의해줬더니 뭔 X소린지...)


한참을 언성을 높이고 싸우다가 

"됐고 소송 걸어, 나도 변호사 사서 맞소송할 테니까 당장 소송해. 

그리고 합의서 쓴 사실 꼭 얘기해라. 

이왕이면 가져가서 보여주고 그래도 승산 있는 다툼이라고 하면 소송 걸어. 

나도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계속 반복되느니 법적으로 아예 못을 박아 버릴라니까"


"야 내가 당장 소송 걸 거니까 딱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했던 그는


불과 1달 만에 소송이 불리한 걸 알았는지 자기가 너무 흥분했던 것 같다며 더 이상 그 이야긴 하지 않았다.


사람 맘은 계속 변한다.

"이혼"이란 목적만 보고 다 해결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합의해 줬다간 피하고자 했던 진흙탕이 늪이 되어 만날 수도 있다.


다툼을 원치 않아 협의 이혼을 선택했더라도 "합의서"만큼은 꼭 받아두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증받지 않은 합의서는 효력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협의이혼을 전제로 한 합의서에 경우 협의이혼이 성사되었다면 그 효력 또한 발생한다고 보기도 한다.


그 합의가 어느 날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현명하게 써야겠지만 피해보기 싫다고 너무 디테일하게 본인 요구조건만 강요하다간 합의서 작성마저 불발이 될 수 있으니 적당한 선에서 꼭 중요한 부분만이라도 합의서 작성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작성했다면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작성한 합의서의 무게감을 지킬 수 있으리라.


여러분의 모든 사랑을 응원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이혼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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