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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옆집언니 Jun 06. 2019

누구나 외롭다

같이 있을 때 외로운 게 가장 외롭다

기어이 감기에 걸렸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프지만 난 챙겨줘야 할 아들이 있는 엄마인지라 아프지도 못한다.


몸이 아프니 조금은 외롭고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아프다고 징징대기도 하고 약한 척 힘든 척 위로받고 싶다고 조르기도 했는데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되니 어느덧 나의 위치는 아이의 엄살을 챙겨줘야 하고 연로해지신 부모님의 건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케어해야 하는 그런 위치가 되었다


나에게 기대고 있는 아들과 날 길러주느라 고생하셨던 부모님의 고된 육신을 보살펴줘야 하는 나는 아프단 소리 조차 맘 놓고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결혼 생활도 그랬던 것 같다.

15년의 결혼생활 동안 많이 힘들기도 했고 때로는 부모님께 달려가 안겨 울고도 싶었지만 나야 울고 쏟아내면 그만이지만 그런 딸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아파하실 부모님 생각에 한 번도 힘들다 말해보지 못하고 목구멍을 삼켰었다.


나의 고단한 결혼은 그 누구의 선택도 아닌 나의 결정이었으므로 누굴 원망하거나 탓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선택한 것이니 그 또한 나의 몫이라 생각했다.


전남편과 이혼을 결정하고 부모님께 어찌 말씀드려야 할까 한참을 고민의 밤을 보냈다

얼마나 아파하실지 알았기에.. 자식의 아픔을 본인의 아픔보다 더 견디기 힘들어하실 부모님임을 알기에 어찌 전하는 것이 그나마 덜 아프실까 단어를 고르고 순서를 정리하면서 고민했다.


"아빠 나 이혼하려고요"

"음......... 오래 생각한 거니?"

"네  많이 생각했는데 그러는게 나을 거 같아요"

"............"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아빠는.... 

마음이 많이 아프다. 

아빠 탓인 것 같고 내가 부족해서 널 힘들게 하는 건가 싶어 마음이 아프네... 아빤 그래..."


"아빠가 뭘 또 못해. 그냥 나랑 그 사람이 안 맞았던 거야. 부부로는 안될사이었나 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어.

아빠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닌데 아빠가 잘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어.. 

이건 우리의 문제였어 아빠는 아무 잘못 없어"


늘 그렇게 본인의 불행도 자식의 불행도 본인 탓으로 돌리는 부모님이어서... 그래서 사실 많이 망설였었다.

나 행복하고 싶다고 이혼하는 것이 되려 부모님 가슴에 더없는 상처를 주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내가 불행하게 사는 것 또한 부모님이 원하시는 바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한마디만 물으셨다


"왜 이혼하려는 거니?"

"같이 있는데 남 같아. 그냥.. 남보다 멀어... 같이 있는데 남처럼 차갑고 외로워"


한참의 침묵


"그래 엄마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어. 

그래.. 괜찮아. 넌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아들도 있고 다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달라질 건 없어. 괜찮아 잘했어"


내가 처음 결혼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아빠는 딱 한마디 물으셨다


"오래 생각한 거니?"

이혼을 얘기했을 때도 딱 한마디 물으셨다

"오래 생각한 거니?"


"네가 그리 결정했으면 많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겠지. 

니 인생인데 내가 뭐라고 할 수 있겠어.

네가 결정하고 네가 감당하고 네가 누리면서 사는 거야. 

단지 아빠는 도움이 되지 못하는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프다..아빠가 많이 아프네..

그래 너무 걱정 마라. 힘들면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다. 기죽지 마라"




내가 전남편에게 듣고 싶었던 말이 저런 말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나의 힘듬을 얘기할 때

 "그래서 어쩌라고~"가 아니라 

 "그래 그럴 수 있지... 맞아 충분히 이해해"


내가 억울함을 털어놨을 때 

"네가 그러니까 그런 대접을 받지? 나한테 누가 그러는 거 봤냐?"가 아니라 

"나한텐 제일 소중한 사람인데 왜 함부로 한대? 

넌 그런 대접받을 사람 아니야 그 사람이 사람 볼 줄 몰라서 그래.. 

네가 이해해 그 사람 수준이 그 정도인 거야..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내가 아파서 누워있을 때

"자기 건강관리도 제대로 못하면 어쩌자는 거냐? 운동을 안 하니 약해 빠져서 그래. 넌 너무 안 움직여"가 아니라

"약은 먹었어? 병원은? 아픈데 무슨 집안일 걱정이야 하루쯤 대충 먹어도 돼 넌 빨리 낫기나 해 "



연애할 때는 수도없이 했던 그 말들을 왜 결혼을 하고 나면 안 하게 되는 걸까?

연애할 때 그 달콤하고 의지가 되던 행동들을 왜 부인이 되면, 남편이 되면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는 걸까?


함께하고 싶어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니 더 외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외로움도, 나의 고민들도, 나의 서러움도 반이 될 줄 알았는데 그냥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둘이 하나가 될 줄 알았던 결혼이 때로는 좀 더 강한 각자의 영역 싸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많은 외로움의 말들 중에 "같이 있는데 더욱더 외로워졌다"라는 말이 나에겐 가장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하고 있는 지금

서로에게 외로움이 되지 않도록 따뜻한 말 한마디, 무심히 주물러주는 어깨 안마, 부드럽고 지긋이 바라보는 그 사소한 눈빛처럼 사소한 것들의 힘을 믿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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