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용자

- 지유의 이야기 I -

by 한 걸음 더

평소보다 조금 밝은 표정의 지유가 늘 메고 다니는 보라색 가방에서 책 한권을 조심스레 꺼내 책 반납대에 올려놓았다. 초등학교 3학년 지유는 ‘마음 담은 도서관’을 매주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우수 이용자다. 또한 작년 이맘때 개장한 ‘마음 담은 도서관’의 첫 이용자기도 했다.


“오늘도 다른 책, 빌려 갈꺼니?”


물론 어떤 대답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재연은 짐짓 모른 척 슬쩍 물어본다.


“네네. 오늘도 한권만 빌려갈 수 있는 거죠?”

“그래. 딱 한권. 오늘은 어떤 책을 빌려가고 싶니? 원하는 책을 말해봐.”

“움..”


조금 망설이던 지유는 금세 결심한 듯 눈을 마주쳤다.


“오늘은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고 싶어요. 엄마가 저를 낳고, 어렸을 때 놀아주고, 함께 있었던 이야기 말구요. 엄마가 제 나이였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친구와 놀았는지, 학교에선 어떤 학생이었는지 다 궁금해요”

“그래? 이번엔 엄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한가보구나”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던 재연은 1년 전 이맘 때, 처음 ‘마음 담은 도서관’을 찾아왔던 지유의 모습이 떠올랐다. 울긋불긋한 눈가와 살짝 부은 눈을 한 채, 투명한 창 밖에서 도서관 안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홉 살 지유는 그날도 보라색 책가방을 멘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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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폭염이 이어지던 날이었다. 그 맹렬한 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는 지유를 보던 재연은 직접 자동문을 열고 아이를 도서관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쾌적하고 시원한 도서관 내부 온도에 아이는 몸도 마음도 조금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보라색 가방과 세트처럼 보이는 신발주머니에는 크게 ‘김지유’라는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안녕? 여기는 마음 담은 도서관이야. 오늘 처음 문을 열었는데, 너가 오늘 첫 이용자야”

“여기가 도서관이에요?”

“다른 도서관들보다 좀 작지? 그래도 너가 원하는 책들은 다 빌릴 수 있단다”

“내가 원하는 책이요?”

“응. 너가 읽고 싶은 책, 너가 알고 싶고 궁금한 이야기들이 담긴 책. 세상에 없지만, 너가 읽고 싶은 내용이 담긴, 그런 너만을 위한 책을 빌릴 수 있어. 원하는 책을 말하면 찾아줄게”

“내가 알고 싶고, 궁금한 이야기.. 하,진짜 그런 책이 있으면 좋겠네요.”


재연의 친절한 설명에도 아이는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면서 다시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를 읽고 싶은데?”

“우리 엄마 이야기요. 우리 엄마 얘길 듣고 싶어요. 왜 내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나랑 같이 살지 않는지. 방학인데도 학교에 가는 거 싫은데.. 연수랑 은우처럼 나도 워터파크도 가고 여행도 가고 싶거든요. 엄마는 이제 나한테 편지도 안 쓰고, 전화도 안 하고. 할머니 한테만 연락 하나 봐요. 함께 살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을 거면서 왜 내 엄마 한 거래요? 흐엉...”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억울함, 서러움, 슬픔들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듯, 지유는 무섭게 쏟아 붓는 한여름 소나기처럼 한참을 울어댔다. 그렇게 삼십 여분이 흘렀을까.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얼굴 전체가 빨갛게 달아올랐던 지유는 조금씩 숨을 고르며 눈가를 비볐다.


“엄마 이야기가 진짜 궁금했겠네. 그럼, 지유의 엄마 이야기가 담긴 책을 찾아볼까?”

“네? 내 엄마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있어요?”

아직도 불그스름한 눈가를 비비던 지유는 흠칫 놀라며 재연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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