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순동이 할머니가 거울에 건네는 주문

by 서하


거울아, 거울아



― 순동이 할머니가 거울에 건네는 주문


89세 순동이 할머니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언제나처럼 거울을 들여다보신다.

거울 속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중얼거리신다.

“밤새 또 검버섯이 늘었구먼… 이 자글자글한 주름 좀 봐라.”

아침부터 드실 약을 하나씩 꺼내어 식탁에 줄지어 놓으시고,

나는 흑염소즙과 유산균을 챙겨 어머니께 가져다 드린다.

우리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가끔 외출이라도 하고 돌아오시는 날이면,

어머니는 거울 앞에 오래 머무신다.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예쁘니?”

장난스러운 말투지만, 그 눈빛은 30대를 마주하듯 생기 있다.

마치 소녀처럼, 말끝엔 “내가 제일 잘 나가~”를 붙이신다.

어쩌면 거울 속 자신에게 마법처럼 힘을 불어넣는 주문이 아닐까.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지 벌써 4~5년이 흐른다.

인생의 반세기를 넘긴 시간 동안,

엄마는 홀로 자식들을 키워내며 억척스럽게 살아오셨다.

가끔 마음먹고 예쁜 옷을 사드리면, 어머니는 “곱다” 하시며 한두 번 쓰다듬어보신다.

하지만 그 옷은 대개 옷장 안에 조용히 걸린 채로 계절을 지난다.

택도 떼지 않은 블라우스, 고운 색감의 스웨터, 입어보지도 못한 바지들.

세월이 갈수록 허리가 굽어지시니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속수무책인 날개 없는 옷들은 입혀질 날을 기다리며 아무 말 없이 서 있다.

"좋은 날 입지 뭐" 하시지만, 정작 그 ‘좋은 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엄마의 옷장은, 그렇게 늘 조용하다.

예전엔 어머니가 병원이나 나들이를 가실 때마다

검은색, 밤색 옷만 입으셨다.

나는 “밝은 옷 좀 입으세요. 왜 안 입으시면서 사세요?”

툭툭 내뱉곤 했고, 모녀 사이엔 자잘한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어머니가 달라지셨다.

분홍색, 알록달록한 블라우스를 고르시고,

홈쇼핑을 누구보다 즐기신다.

화면 속 쇼호스트보다 더 신나 보이실 때도 있다.

하지만 외출을 다녀오신 후엔 유독 말씀이 없으시다.

외출은 대부분 나와 동생과 함께,

보행기를 차에 싣고 밖으로 나가시기 위해서는. 두 시간쯤 준비를 하셔야 하는 각오가 필요한 외출이다

혼자서는 이제 어디든 쉽지 않으시다

세월을 어찌 거스르랴.

어머니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마주 보며

주름진 삶을 되짚으신다.

가끔은 지난 세월이 억울한 듯, 말없이 앉아 계시기도 한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통해

‘지금’보다 더 ‘미래’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걷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취미 하나가 하루를 어떻게 채워주는지,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할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를 매일 깨닫는다.

책 속에서 문장을 고르고,

마음을 적는 노트에 오늘도 한 줄 남긴다.

살아갈 정열을 잃는 순간부터

인생을 향한 패기는 사라진다.

나이가 들어서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변화 앞에 주저하고, 마음속 불꽃을 꺼버릴 때

인생은 점점 외로워진다.

오늘도 나는 거울 앞의 어머니에게

오즈의 마법사처럼 주문을 걸어본다.


“괜찮아, 순동아.

지금의 너도 참 근사하구나.

하루 더, 웃으며 살아볼까?

거울아 거울아,

오늘의 내가 가장 반짝인다.”




내일 아침, 거울을 들여다보실 때

엄마의 마음속에도 이 주문이 조용히 피어났으면 좋겠다.

거울 속 순동이 할머니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웃기를 바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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