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운영하는 우리 집 막걸리 공장
요즘 막걸리를 만드는 것에 한창 빠져있다.
막걸리를 처음 만들게 된 것은 지난가을, 집에 햅쌀이 잔뜩 쌓여서였다. 어떻게 하면 가장 신선할 때 맛있게 다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밥 지어먹을 생각은 안 하고 술 만들 생각을 해낸 것! 고두밥을 제대로 지으려면 찜기가 필요한데, 전기밥솥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바로 시작했다. 그렇게 집에 있는 도구로만 재미 삼아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나의 막걸리 공장(=사실 아주 작은 옷방이다)엔 발효통만 벌써 6개. 즉, 서로 다른 술을 동시에 여섯 가지를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야호!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생선 반찬을 좋아했다. 젓가락으로 집으면 탱글 하지만 입안에서는 사르르 녹아버리는 생선의 식감을 가장 좋아하지만, 굵은 뼈대와 잔가시는 정성껏 발라내 하얀 속살만 골라내는 것부터 이미 즐겁다. 밀키트를 조리하는 것보다 재료들을 직접 보고 구매하고 손질하는 요리를 좋아한다. 명품 지갑에는 썩 관심이 없으며 한 땀 한 땀 직접 기워 만든 가죽 카드 지갑을 7년째 사용하고 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보고 듣고 자란 것 같은데, 그 이전에 나는 대체로 과정 자체를 즐기는 건 확실하다.
술도 그렇더라. 내가 만든 술을 ’ 마신다 ‘는 것도 신기했지만, ‘만드는’ 과정부터 이미 오감이 즐거웠다.
우선, 아주 차가운 물로 쌀을 씻는다. 손이 새빨갛게, 얼얼해져 무감각 해질 때쯤 이쯤에서 그만두고 대충 만들까 싶지만, 거기서 대여섯 번 더 물을 갈아주며 씻다 보면 딱 원하는 정도의 뽀얀 상태가 된다. 그렇게 씻은 쌀은 반나절 불렸다가 지에밥(고두밥)을 지어준다. 식사용 밥을 지었을 때보다 훨씬 고슬고슬하고 고소하고 단맛이 은은하게 퍼진다. 잘 쪄진 밥을 쟁반에 퍼담고 있자니 입맛이 싹 돈다. 몇 줌은 입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뜨거운 지에밥은 빠르게 식혀주는 게 좋다길래, 이 작업은 주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새벽에 한다. 가만 보니 해가 뜨기도 전, 툴툴거리지 않고 이토록 눈이 번쩍 떠진 적이 있던가 싶다.
식힌 지에밥과 물과 누룩과 섞어 치대 준다. 이때 조물조물하는 촉감이 나는 참 좋다. 처음에는 거칠고 퍽퍽하지만, 수분을 머금은 쌀과 누룩이 서로 부드럽게 풀리며 섞이는데, 어렸을 때 바닷가에서 만져본 갯벌의 촉감과도 비슷하다. 어른들을 위한 촉감놀이 같달까?
그렇게 잘 치대 준 다음 유리항아리에 넣고 14일 정도 기다리면 끝! 방안은 달큰한 술냄새로 가득해지고, 새콤한 술이 나온다. 쌀의 상태와 누룩의 종류에 따라 발효를 더 오래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짧게 끝내는 경우도 있다. 채주 할 때부터 이번엔 술맛이 좋겠구나 대략 짐작할 수 있는데, 잘 익은 술일 수록 쉽게 걸러지기 때문이다. 쌀과 누룩 덩어리와 수분이 잘 분리되어 조금만 조물거려도 많은 양이 술이 나온다. 성격이 급한 나는 초반에는 늘 적당한 날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일찍 술을 걸렀다. 사실 그래도 전혀 문제없다. 서너 일 일찍 채주하면 신맛과 탄산이 강한 개성 있는 막걸리가 되기 때문. 탄산이 강해 좋지만 풍미가 아쉬울 땐 과일청을 넣었더니 그런대로 또 맛있다. 그래도 며칠 더 발효했다면 신맛은 훨씬 부드러워지고 단맛이 은은하게 퍼지는 뭉근한 막걸리가 될 거다.
막걸리를 대 여섯 번 빚어본 후에야 드디어 하루 이틀은 좀 더 차분히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발효통을 살짝 열어 냄새를 맡으며 말이다. 처음엔 아삭한 자두향이 나는데 점차 달콤한 참외향이 나면 잘 익어가는 거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사진을 찍어두는데, 어제오늘은 큰 차이가 없어 보여도 삼일 전 모습과는 확실히 다르다. 꾸덕했던 내용물들이 점차 고형물과 액체로 층이 나뉘고, 또 그 위로 맑고 투명한 술이 떠오르는 과정은 아주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막걸리는 ‘막 거른 술’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는데, 만들어보니 ‘기다림의 미학’이 녹아 있는 술이다.
14일을 발효하여 막 거른 후 마시면 알코올과 풍미가 빵빵 뿜어져 나오는 술이 된다. 그래도 막걸린데, 한 잔 정도는 얼음을 타서 바로 마셔줘야 또 인지상정이지! 알딸딸해진 기분 좋은 상태에서 남은 술들을 김치냉장고에 넣어준다. 발효하며 기다렸던 시간인 딱 14일 정도, 냉장고에 보관했다 마시면 탄산과 향과 맛이 조화로운 술이 된다. 이것이 숙성의 힘이구나!
처음 술을 만들 땐 딱 일주일만 발효시켜 바로 마셨는데, 이제는 3주를 발효해 한 달 이상 냉장 숙성해 마시기도 한다. 과정 자체를 즐기지만 성격이 급해 결과는 조금 엉성했던 내가, 막걸리를 만들며 배운 작은 교훈 같은 게 있다. 기다림! 과정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라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봄은 집에서 술을 만들기에 딱 좋다. 방 안의 온도가 23도 정도가 되니, 누룩 속 효모와 효소가 가장 신나게 알코올과 탄산을 만들어 내더라. 방의 온도를 어떻게 정확히 아냐고? 옷방이 습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던 내가 온•습도계를 샀다 이거다. 그렇게 온도를 매일 체크하는게 나의 소소한 일이 되었고. 아무렴, 내가 이 방구석 공장장인데 이 정도는 도맡아 해야지!
덕분에 올봄에만 8가지 막걸리를 빚었고, 2개는 아직 4주째 발효 중이다. 쌀, 누룩, 물만 있어도 새큰달큰한 술이 나오지만, 여기에 다른 식재료를 넣으면 재미있는 술이 된다. 얼마 전에는 봄을 보내주며 세일하는 딸기를 넣어 새콤한 딸기 막걸리를 만들었고, 말린 쑥을 쌀과 같이 쪄내서 애주를 빚기도 했다. 이건 1년을 숙성하여 맑게 마시면 단맛이 훨씬 깊어진다고 하여, 내년 봄에 쑥떡이랑 같이 먹어볼 셈이다.
일주일 사이에 방 안의 온도가 5도 이상 올랐다. 초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은데 크게 문제는 없다. 더운 여름에는 오히려 미생물들의 발효가 빨리 끝나기 때문에 같은 기간 동안 더 많은 종류의 술을 만들 수 있으니까! 이렇게 나의 옷방이자 작은 막걸리 공장은 여름에도 가을에도 24시간 풀가동 예정이다.
p.s 옷에서 막걸리 냄새 나도 이해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