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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베리 Nov 13. 2024

인공지능도 잘하는 일이 따로 있다

인공지능은 공장 기계와 다르다. '틀려도 되는 일'을 '비교적' 잘한다

요즘 쓰레드(Threads)라는 SNS를 하루에 5분정도씩 본다. 뭐랄까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피드는 아직까지 익명판 링크드인 같다. 링크드인은 거의 실명 기반이라 좀더 고상하고 우아한 포스팅이 올라온다면, 쓰레드는 익명이라서 보다 원색적이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된 판이라 그런지 패권을 쥐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이 보인다. 대개는 인사이트를 공유하려는 듯하다가 자기자랑으로 끝나서 아쉽지만 개중에는 정말 본인이 노력해서 얻은 괜찮은 정보를 주시는 분들도 보인다. 결국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쓰레드의 주류를 이루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다만 오늘은 쓰레드라는 SNS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려는건 아니다. 그럼에도 쓰레드 얘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쓰레드에서 활동하는 choi.openai(CHOI) 라는 인플루언서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CHOI는 주로 최신 인공지능 활용 사례에 대한 포스팅을 올린다. ChatGPT나 Perplexity같은 사실상 범용 애플리케이션은 물론 영상 편집(RunwayML), PPT 디자인(Canva; 물론 AI 기능이 완전히 메인은 아니지만) 등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제품과 활용 사례를 소개한다 (대부분 앞서 얘기한 사례들과 같은 B2C향 소프트웨어를 다룬다).


개인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소프트웨어 제품을 기획 후 출시해본 경험이 있고 여전히 그 잠재력과 발현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CHOI의 포스팅을 한동안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신기한 제품과 기능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막상 실제로 설치하고 활용해보게 되는 앱이나 기능은 없었다. 아마 나만 그런 것이고 다른 분들은 잘 받아먹어서 활용하시고 있을 수도 있지만, 피드를 대충 내려보니 확실히 초반에 비해 좋아요나 댓글 수가 많지는 않은 듯하다. 화제성이 있는 소재를 다룬 포스팅 (보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여전히 인기가 많으나(좋아요 100개 이상) 그렇지 않은 포스팅은 예전에 비해 열기가 덜하다(좋아요 1자리수).


왜 그럴까? 분명히 인플루언서의 성실성이나 매력도 때문은 아닌 듯하다. CHOI는 하루에도 10개 이상의 포스팅을 올리며 설명도 깔끔하거나 매력적이다. 그보다는 내용에서 독자들이 단순 흥미 이상의 효용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달리 말하면 정보성 콘텐츠에서 흔히 기대하는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신기한 경우: 소개한 제품이 내 삶을 바꿔줄 거라고 기대되진 않음. 하던 대로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임. ChatGPT 쓰던 사람에게는 웬만큼 차별화된 활용 사례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Claude나 Perplexity 관련 포스팅을 이렇게 느껴질 것 같음

써볼 엄두가 안나는 경우: 소개한 제품이 꽤 매력적이고 한번 써볼까 싶은 생각이 듦. 그렇지만 괜히 인공지능에게 맡겼다가 결과가 좋지 않거나 과정에서 오류가 나면 어쩌지 싶음. 그때 가서는 내가 손댈 엄두가 안나기 때문. 위에 언급한 영상 편집이나 PPT 디자인이 그렇지 않을까 싶음.


개인적으로 인공지능 제품을 기획 및 개발하는 경우 2번 문제를 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틀리면 안되거나 완성도가 높아야 하는 일에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경우 어시스턴트 역할에 한정된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꽤 자주 틀리고 그래서 검토와 수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싶지만 편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어느날 CHOI가 소개한 Runway 관련 포스팅을 보았다. 오 바로 유튜브 시작하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검토와 수정이 꼭 필요할텐데 그럴 역량이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개발 앱인 Cursor가 개발자를 순식간에 대체하지는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훨씬 큰 임팩트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AI 에이전트(인공지능 기반 제품이 글쓰기, 마케팅, 개발 등 특정 업무를 완전히 담당하는 것)가 등장하기 적합한 분야는 <틀려도 되는 일>이다. 원래도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10번 해서 1번 성공시키던 업무의 경우 인공지능이 10번 중 2번 성공시키면 아예 맡겨버려도 괜찮을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 광고 분야에 머신러닝이 가장 먼저 활용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아무리 분석해봤자 클릭율 전환율을 극대화하는데 한계가 있고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몇배 정도는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외에 넷플릭스나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콘텐츠 추천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런 문제는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리면 비용은 줄고 성과는 더 좋다.


돌아와서 쓰레드 판에서 CHOI가 처음 등장했을때만큼의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범용적이면서 적합한 문제를 풀어주는 AI 에이전트 제품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광고, 추천, 검색처럼 ‘틀려도 되지만’ 기존보다는 시간을 아껴주거나 더 정확하면 되는 문제를 푸는 제품이 없다. 그러다 보니 당장 내 삶에 적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떨어지는 듯하다.


그래서 아직은 인공지능 기술/제품 에반젤리스트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미국의 선도적인 뉴스나 제품을 발빠르게 소개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감사하고 잘 되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인공지능 기술이 빨리/안전하게 발전해서 유의미한 활용 사례들을 만들어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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