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브레이크
그날 밤. 내 얘기를 듣던 남편의 생각은 나와 달랐다. 그럴 줄 알았다. 무엇보다 ‘당사자’가 아니니까. 당사자는 아니지만 경제적 의무는 공동이행해야만 하는 ‘남편’의 입장에서 꼼꼼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일단, ‘상가의 작은 평수는 순식간에 빠진다’라는 부동산 사장님의 말은 믿기 어렵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소규모 가게들이 줄줄이 폐업한 이후였고 겨울 추위 때문에 잠시 소강 중이었던 코로나, 독감 바이러스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당분간 소상공인들의 개업은 쉽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최소 2년 계약을 해야만 하는 게 부담스러울 것 같다는 의견도 주었다. (1년짜리 계약을 할 수는 없다는 걸 재차 확인했다). 월세 45만 원에 관리비 5만 원이면 1년에 600만 원이다. 보증금 1천만 원은 돌려받는 돈이라고 쳐도, 2년간 1200만 원은 무조건 들어가는 곳이다. 혹시나 중간에 계약을 해지하고 싶어도 다음 임차인 구하기가 어려울 수 있고, 그렇게 되었을 경우 월세와 관리비만 속절없이 나갈 수 있다는 논리였다. 나 역시 1년 계약을 원했으므로 그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끄덕.
말미에는 남편이 대안까지 제시해 줬다.
“상가의 빈 공간에 집기를 채워 넣는 것도 돈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니 차라리 ‘공유 오피스’ 같은 데가 낫지 않아? 책상, 의자, 커피머신 다 있고 청소까지 알아서 해 주는 곳들 요즘 많잖아.”
남편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걱정되던 것들을 한 번 더 깔끔히 정리해 준 덕에 단점들에 대해 더욱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한 ‘작업공간’ 그 자체가 아니었기에 ‘공유 오피스’ 같은 곳은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적당히 차려입고 각양각색의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과 출입문을 함께 공유하는 그런 곳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설령 공유오피스의 선택옵션 중 1인실을 구한다고 할지라도 분위기는 답답할 것 같았다. 내가 왜 혼자 있고 싶은 것인지, 어떤 분위기를 원하는 건지 설명해 보았으나 완벽히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남편, 나에 대한 공감력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네.’
우리 부부는 둘 다 T (사고형_Thinking) 성향의 MBTI를 가지고 있다. T 성향 인간의 일반적 특징으로 언급되는 것들 - 감정보다 논리와 사실 중시, 의사결정 시 효율성과 객관성을 우선시하며 분석적 사고와 목표 지향적 태도를 보인다 - 에 매우 동의한다.
다만 T들을 향한 또 다른 해석 –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 는 의견에는 결코 찬성할 수 없으며 편견일 뿐이라고 줄곧 주장해 왔는데, 그날 밤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어쩌면 오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미간마저 대문자 T의 형상을 띌 정도로 나보다 더 강력한 T 성향의 남편 덕에 잠시 브레이크가 밟혔다. 남편 ‘탓’ 아니고 ‘덕’이라고 썼음을 거듭 밝힌다. 남편 의견을 존중한다. 나도 남편의 계획들에 브레이크 종종 밟아봐서 억울할 것 없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더 나은 곳을 찾아봐야겠다. 분명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