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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아파트 상가를 내 품에?

두 번째 부동산 방문기

by 밀도

어제는 부동산 사장님께 ‘당장 급한 건 아니어서....’라는 말을 남기며 그곳을 빠져나왔지만 사실 내 마음은 굉장히 급해지고 말았다. 오랜 시간 잠잠했던 마음에 부스팅이 제대로 되었던 것이다!


‘이왕 이렇게 시작된 거, 제대로 한번 알아봐야겠어!’


이튿날, 나는 또 다른 부동산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어제는 방송가 근처를 알아봤으니 이번엔 우리 집 근처를 탐색해 보기로 했다. 지역은 마포구 성산동이다. 집 근처에 작업실을 구하게 되면 이동 거리를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 걸어 다닐 수 있으니 주차 스트레스에서도 해방될 것이었다. 집 근처가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분명 있다. 방송가 쪽보다 오히려 집 근처가 더 나을 수 있었다.


퇴근 후 부랴부랴 갔는데 벌써 7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평일인데도 영업 끝난 부동산이 꽤 있었다. 우리 집 아파트 중개를 담당했던 곳도 불이 꺼져있었다. 주말에 다시 와야 하나 싶던 찰나, 동네 편의점 맞은편에 자리한 부동산 하나가 아직 불을 밝히고 있었다. 럭키! 서둘러 들어갔다.


아마도 40대 후반, 순한 인상의 여자 중개사님이 인사해 주셨다.


“찾으시는 게 있으세요?”


오~ 왠지 시작이 좋았다. 어제보다는 좀 더 상냥하신 분이 확실했다.


자, 이제 내가 얘기할 차례! 차분하게 제대로 물어보는 거야! 나는 어제보다 좀 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여쭤봤다. 물론 이번엔 소파에 바로 앉지 않고 엉거주춤 선 채로.


“1000에 50 이하, 7평 정도 개인 작업실로 쓸만한 공간 있을까요?”


이번엔 질문 대신 답을 해 주시려나? 사장님의 답을 기다렸다.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시던 사장님께서 드디어 입을 여셨다.


“상가도 괜찮으세요? 얼마 전까지도 있는 걸 보긴 했거든요”


휴, 오늘은 성공!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듯했다. 나는 그제야 소파에 편히 앉으며 답했다.


“그럼요, 상가도 괜찮아요! ”


우리 동네 상가들은 일단 내가 자주 다니는 곳이고 그만큼 익숙한 곳이라는 점에서 좋았다. 화장실 위치와 위생상태, 주차장 규모, 수선실과 세탁소와 피아노학원이 몇 층에 있는지, 상가 마트의 신선식품들은 얼마나 신선한지 다 꿰고 있다. 게다가 집에서 슬리퍼 끌고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이동시간도 단축되고 얼마나 좋은지!


컴퓨터로 확인을 하시고 이곳저곳 추가로 전화해 보시더니, 이 동네 상가 공실이 두 군데 있다고 알려주셨다. 한 곳은 1000/45 (5.6평), 또 다른 곳은 1000/65 (11평)이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어떻게 생긴 매물들인지 너무 궁금했다. 가능하면 오늘 두 군데를 다 둘러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11평짜리는 내가 원하는 조건보다 오버스펙이긴 했지만, 일단 둘 다 보고 비교해 보는 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약속을 잡으신 사장님이 재킷을 걸치며 말씀하셨다.


“좋습니다! 가까운 데부터 가 보시죠!”


*


먼저 본건 1000/65 (11평) 매물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짜리 상가였는데 하필이면 꼭대기 층이라 걸어 올라갔다.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올라가는 동안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올라가 보니 동네의 또 다른 부동산 사장님이 먼저 와 기다리고 계셨다. 그분이 도어록 비번을 눌러 열어주시는 것으로 보아 매물의 원 담당(?)이 그분이신 것 같았다.


최근까지 종합 보습학원을 운영한 곳이라고 한다. 원장님이 아직 물건들을 못 빼신 모양이었다. 내부가 학원 집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문제는 유리벽 칸막이였다. 교사실, 강의실 등으로 공간분리를 하기 위해 유리벽을 많이 세워두었는데 이것 때문에 11평임에도 불구하고 답답하고 좁아 보였다. 내가 사용하려면 저 유리벽들을 다 철거해야 할 터였다. 애매한 느낌이었다.


‘괜찮아, 나에겐 또 다른 상가가 남아있잖아?’


기록용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그곳을 나왔다.




5분 거리에 있는 두 번째 상가도 가 보았다. 1000/45 5.6평이었다. 여기 역시 엘베가 없는 3층짜리 상가였지만 우리가 볼 매물은 2층에 있었다. 2층 계단이야 뭐, 너무 가뿐하지!


수학 과외를 하던 곳이라고 한다. 가로:세로가 4:6 정도의 비율을 가지고 있어서 정사각형보다 공간 활용이 좋아 보였고, 남향으로 큰 창문이 하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싱크대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전 입주자가 철거하지 않고 그냥 두고 갔다고 한다. 있으면 쓰임이 좋을 것이었다. 밖의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손을 씻을 수 있고, 양치도 할 수 있고, 간단한 설거지 등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수도관이 연결되어 있어, 원하면 정수기 설치도 할 수 있었다.


난 여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처음 간 상가에서는 사진을 몇 장 안 찍었는데, 이곳에서는 동영상 버튼을 열심히 누르며 기록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것저것 추가로 묻고 여기가 더 마음에 든다고 긍정적 시그널을 팡팡 풍겨놨다.


“고민 좀 더 해 보고 며칠 내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러세요~ 상가의 경우 작은 평수는 순식간에 빠져요, 맘에 들면 시간 끌지 말고 연락 줘요!”


어제와 달리 굉장히 알찬 부동산 방문이었다.

지금 가장 마음에 드는 후보는, 집 근처 상가 2층에 위치한 5.6평 매물로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5만 원짜리다.


집에 돌아와서 장단점을 다시 점검해 봤다.


<장점>

-상가 2층 (5.6평)으로 내가 원했던 적당한 공간.

-무료 상가주차장 이용 가능.

-도어록이 설치 돼 있음. 안전.

-창 있음. (날씨 확인 가능)

-싱크대 있어서 정수기를 설치하거나, 양치하기 편안함.

-냉온풍기 (벽걸이형 LG) 설치 돼 있고 20만 원에 양도받을 수 있음.

-곧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의 학교와 가까워서, 방과 후 친구들과 놀러 올 수 있음.


<단점>

-화장실이 외부에 있으며 상태 안 좋음.

-집기(책상, 책장, 기타) 들을 다 구매해야 함.

-도배도 다시 해야 할 듯.

-월세 부담감 (월세 45만 + 관리비 5만) 관리비 5만 원 정도라고 했는데 무조건 플러스 예상.

-최소 계약기간 2년. (1년짜리를 원했으나, 상가 계약 1년짜리는 없다고. 만약 중간에 계약해지하고 싶으면 내가 중개료 내고 알아봐야 함. )

-곧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의 학교와 가까워서, 방과 후 친구들과 놀러 올 수 있음.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위해 장단점 리스트를 작성해 봤는데 쉽사리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과연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내 미래가 너무너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KakaoTalk_20251021_125712383.jpg 아파트 상가 1000/45 5.6평 의 실제 모습 (싱크대, 에어컨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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