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23만 원으로 행복을 건져 올린 1년의 기록
꽤 오랫동안 앓고 있었습니다. ‘작업실 병’ 이란 걸. 나만의 작업실이 너무나 갖고 싶어서 방법이 뭐 없을까 혼자 진지하고 간절하게 궁리한 세월이 무려 9년입니다.
자기애 넘치는 어느 날엔 용기가 차올랐습니다. 샤넬백 같은 건 없어도 괜찮으니 남들 사는 가방 하나 살 돈 아껴서 집 근처 6평짜리 오피스텔 1년이라도 일단 질러보고 싶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그 정도 실행은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반면, 일도 육아도 녹록지 않아서 자기애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시기를 만났을 땐 자신감이 쏙 들어갔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개인 작업실이 정녕 옳은 선택인지 스스로 묻고 또 묻다 보면 결국엔 역시나 과한 욕심인 것 같았습니다.
현역 프리랜서 방송작가이자 9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인 저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양가 어머님들께 아이 돌봄을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벌써 9년째 할머니들이 저희 집으로 출퇴근을 하고 계십니다. 신랑의 야근이나 저의 해외촬영 등이 있을 땐 온 가족 일정 맞추기가 여간 복잡한 게 아닙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 어른 넷이 협력하는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인 제가 개인 공간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게 어찌 보면 참 이기적인 거 인정합니다. 유년기의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은 ‘일이 끝나면 웬만하면 바로 아이가 있는 집에 가줘야 하는 사람’ 이 자연스럽거든요.
그런데요, 머리로는 아는데 때때로 제 마음은 답답했습니다. 고요한 나만의 공간에서 잠시라도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하루 이틀 반짝 말고, 당분간 어느 정도는 그래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업실을 꼭 구하고 싶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이기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오랜 염원이라 애틋했던 내 ‘작업실 앓이’를 쉽게 어찌하지 못한 채 하루에도 몇 번씩 보자기에 쌌다 풀었다 하며 간직하고 살다 보니 어느덧 9년. 올 해로 마흔다섯이 되었습니다.
제게 마흔다섯은 좀 남다릅니다. 막 사십 대가 되었을 때보다 사십 대의 중간을 넘어가고 있는 이 순간이 왜인지 제겐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올해 들어 노안과 새치의 공격을 동시에 받았기 때문일까요? 아님, 프리랜서 방송작가라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방송생태의 급격한 변화와 위기 때문이었을까요. 어쩌면 올해로 결혼 10주년을 맞아 인생을 잠시 점검해 봤는지 모릅니다. 어떤 이유가 주범인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올해는 ‘내 꿈’에 좀 더 마음을 쓰고 싶었습니다. 다른 걸 하느라 시간을 보내면 크게 후회할 것만 같았고 올해를 잘 통과해야만 사십 대 후반을 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10년 정도 품었으면 한 번쯤은 잉태를 시켜봐야 끝이 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2024년 5월 월세 23만 원짜리 6.9평 나만의 작업실을 드디어 구했습니다. 이 책은 나만의 공간 ‘개인작업실’에 대한 간절함을 ‘버킷리스트’라는 이름으로 꽁꽁 싸 두기만 했다가 드디어 매듭을 풀고 보자기를 치워 낸 과정의 기록입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건져 올린 수많은 행복감을 마주했습니다. 경험해 보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그 좋은 기분들이 흐려질까 봐 글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마흔다섯 살 워킹맘 한 개인의 ‘작업실병 치유기’라 혼자 사는 분들에게는 제 간절함이 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출산과 동시에 아이와 운명공동체가 되어 살아온 엄마라면, 워킹맘이든 전업맘이든 상관없이 ‘나도 나만의 작업실 한번 가져볼까?’라는 꿈을 품어보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제대로 한번 부추겨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