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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레꼬레 Feb 15. 2024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백수린 지음

백수린 작가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지만,

그저 이 제목과 표지 그림이 너무나 평온하게 느껴져서 빌린 책.

그리고 내 촉이 틀리지 않았음을 책을 덮고 나서 알게 되었다.


아마도 싱글인듯한 백수린 작가는 서울 구도심 어느 언덕 높은 곳의 재개발 후보지로

충분히 가능할법한 오래된 지역에 주택을 구입해서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소설가이다.


틈틈이 써내려 간 것인지, 어떤 잡지나 매체에 연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에세이에는 꽤나 농밀하게 작가의 일상과 약간의 역사(?) 같은 것이 녹아져 있다.


사실 나도 늘 주택에 사는 상상은 하는데 막상 아파트의 편리함과 투자성을 포기를 못하는데,

과감하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 그것도 오래된 마을의 구옥을 덜컥 구입하여

고치면서 살아가는 작가의 고집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때때로 수도가 터져서 이웃들의 민원이 빗발치기도 하고, 길이 얼어서 보행에 어려움도 겪지만

그 안에서 이웃들 간의 소소한 커뮤니케이션을 즐기면서

서울의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한 동네에서 

자신만의 시계로서 살아가는 그녀가 참 옹골차게 느껴졌다.


단단한 사람이라 하면, 심지가 굳고 흔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라고 쉽게들 생각하지만

내가 정의하는 단단한 사람은 실로 유연한 갈대처럼 변화에 잘 흔들리면서도

그 갈대의 뿌리는 땅에 깊숙이 박혀있으니 결코 뽑히지는 않으면서 

잔잔하게 생명력을 뽐내는 그런 모습이 있는 사람이다.

너무 굳건해서 자신의 신념만을 뿜는 것이 아니라

신념은 살아있으되, 흐름의 변화에 맞춰갈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진정 단단한 모습이라 생각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백수린 작가가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실에, 생활에 투덜대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다듬고 먼지를 쓸어내는 정갈한 그런 삶.


내가 퇴사 이후에 늘 꿈꾸고 있고, 어느 정도는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삶인데

이 에세이집에서 생활의 정갈함에 덧붙여 옹골찬 아이덴티티의 뿌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순간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줄어드는 것 같지만,

하루에 단 5초 정도라도 이만하면 행복하다라고 느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는 에세이집.

지금 각박한 환경 속에서 숨쉬기 힘든 분들께 소소한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으로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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