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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 Apr 16. 2024

굿모닝 얄리

10년전 수학여행 떠난 아이들이 도착한 곳

석정현 씨의 삽화 '굿모닝 얄리'


그날은, 아무래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그들과 같은 나이의 고2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나는 매일매일 아이들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힘들었었다. 마치 그들에게 그 일이 일어난 것처럼 몸서리를 치곤했다. 아이들의 뽀얗고 토실토실한 팔뚝을 보는 것은 고통스러움 자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눈앞에 있는 아이들을 만질 수 있는 것이 감사했다. 옆에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적 같았다. 그때부터 마음속에서부터 나오는 말도 달라지고 눈빛도 달라졌다. 마치 다시 살아 돌아온 아이들을 대하듯이 순간순간이 애틋해졌다. 그냥 그런 변화가 와 버렸다.



유가족은 감히 언급할 필요도 없이, 많은 국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렸듯이 나도 오랫동안 그랬다. 내가 이 정도면 남은 가족은 어떨까,는 상상할 수도, 입으로 내뱉을 수도 없었다. 매체들이 쏟아내는 것들은 고통을 가중시키기만 했다. 몇 년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날 그림 한 컷이 어두운 심연의 바다 밑에서 끌어올려주었다. 그게 석정현 씨가 그린 ‘굿모닝 얄리’다.



그림의 시작은 고신해철씨가 부른 ‘날아라 병아리’다. 가수가 1994년에 발표한 자전적 노래다. 어린 시절 키우다가 며칠 만에 죽어버린 노란 병아리, 얄리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이다. 그림에는 당시 비명에 간 가수, 마왕 신해철이 그때의 몸집과 헤어스타일로 산듯하게 하얀 옷을 입고, 기타를 가슴에 안은 채 바닷가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옆에는 노란 병아리 얄리가 앉아 있고, 세월호의 아이들이 바다에서 뛰어나오고 있다. 편안해 보이는 하얀 옷을 걸쳐 입고 신나게 웃으면서. 마치 자신들이 가던 곳에 잘 도착한 것처럼.



한 아이가 소리친다. “아저씨, 이번엔 ‘굿모닝 얄리’ 불러주시면 안 돼요?” (날아라 병아리 노래 가사에 ‘굿바이 얄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마왕은 노래를 새로 만들었나 보다. 그 노래는 그 아이들만 들을 수 있겠지. 엄청 궁금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들이 우리보다 그렇게라도 더 행복할 수 있다면 다 괜찮다. 그냥 그림이지만 나는 믿기로 했다. 그 햇살 좋은 맑은 바닷가를 그들이 간 곳으로. 그리고 노래도 잘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어른이 함께 있어서 든든한 것으로. 오늘 자세히 보니 신해철등 뒤에 또 다른 어른이 있네요. 더 든든 하네요.



지금도 그 날이 되면 난 그들과 함께 있을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를 듣고 저장해 둔 ‘굿모닝 얄리’를 꺼내 본다. 그리고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그들이 그 아이들임을 다시 상기한다. 그래서 이곳에 남아있는 그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말 한마디라도 용기를 주는 것으로 내뱉을 수 있게, 마음을 자꾸 닦아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래도 오늘 아침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대책 없이 솟구친다.


'날아라 병아리' 한번 들어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X41UVzR1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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