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80 중반을 넘기신 부모님은 아침은 늘 따뜻한 밥을 챙겨서 드신다.
도란도란은 아니지만 식사 중에 한 두 마디 이야기도 하신다.
“피 뽑으러 가는 날이네요”
“오늘요?”
“으음.”
정기적으로 하는 피검사였다. 식사와 상관없는 것이라 아침을 드시고 갈 참이셨다.
아마도 엄마는 아침 설거지를 하시고 아빠는 이를 닦으시고 외출 준비를 하셨을 거다.
“나, 갔다 옵니다.”
손에 묻은 물을 훔치며 현관으로 배웅하러 가는 사이 식사 중 한 대화는 까맣게 증발해 버린다.
“왜 옷을 그렇게 입었어요?”
“어떤데요?”
“운동 가면서 왜 그걸 입고 가요? 입던 거 입지.”
아빠는 식사 후에는 꼭 30분씩 나가서 걷고 오신다. 당뇨 때문에 칼로리를 소비하기 위해 엄마가 잔소리를 하기 전에 알아서 나가신다.
“으음. 그럼 가지고 와보소.”
엄마가 운동할 때 입는 옷을 가져오고, 아빠는 입고 있던 옷을 벗으신다. (병원가려던 참 아니셨냐고요.)
“아이고, 왜 속옷까지 입고 그래요. 오늘 왜 이러시나. 걸으러 가면서 왜 런닝을 입고 그래요?”
“이것도 벗어요?”
“벗고 이것만 입어요. 거참, 맨날 하던 것도 이제 못하시네.”
그렇게 아빠는 외출복을 벗고 운동할 때 입는 옷을 입고 나가신다.
엄마는 그런 아빠가 몹시 걱정스럽다.
요즘 술을 자꾸 드시는 게 신경이 쓰인다.
TV에서 아침 프로그램을 보지만 마음에는 아빠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운동 가서 돌아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아무 기별이 없다.
엄마는 슬슬 걱정이 되신다.
‘운동하다 더워서 쓰러졌나? 어디 길을 잃고 딴 데로 갔나?’
별생각이 다 든다.
괜히 베란다로 나가 밖을 내다본다. 한 달째 지속되는 폭염으로 벌써 공기가 후텁지근하다.
1시간이 훨씬 지나서 현관문이 열린다.
“아니, 어디서 뭘 하다 이렇게 늦게 와요?”
“병원 갔다 왔지요.”
“운동하러 간 게 아니고요?”
“오늘이 피 빼는 날이잖아요.”
“그럼, 옷 갈아입으라고 할 때, 병원 간다고 하지 왜 아무 말 안 했어요? 참나.”
“갈아입으라니까 갈아입었지요. 허참”
그러시고 운동만 하고 들어오지 않고, 병원을 다녀오신 게 신통하다.
전화를 했더니 엄마는 기가 막힌다며 웃음을 참지 못하신다.
“내가 요즘 깜박깜박하는 게 심해진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는데 수면제를 먹어서 그런가 싶다. 친구는 그거 몇 년을 먹어도 괜찮다는데.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너 아부지는 원래 그랬지만 난 안 그랬는데 이제 나도 그렇다. 병원 갈 거면서 왜 옷은 갈아입냔 말이다. 아이고 참. 그러고는 또 병원을 갔다 왔어요. 둘이서 하루종일 아주 웃기지도 않는다. 사는 게 매일 이렇다.”
같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뭐 괜찮은 거지. 너무 걱정 마시게. 그 정도는 아주 양호한 거니까 괜찮아요.”
엄마는 옛날 일은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이 나서 밤잠을 설치기도 하면서,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은 아득하게 기억 저편으로 보내고 계신다. 위로랍시고 웃으면서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좀 쓸쓸했다. 이러나저러나, 그렇게 매일 ‘재밌는’ 시트콤 찍으시며 오래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