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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Sep 25. 2020

코 주변은 거의 바르지 않는다

메이크업과 비염




결혼 준비를 시작하며 결혼 날짜를 1월로 잡았을 때 부모님은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춥거나 눈이 오면 오는 분들 불편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시다가 “그리고 너 화장은 어떻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추운 겨울에 비염이 심해질 텐데 화장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거였습니다.

비염을 앓은 분들은 잘 알겠지만 콧물을 자꾸 닦고 코를 풀다 보면 코 주변에 각질처럼 일어나거나 빨갛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 위에 화장을 하면 매끈하지 않고 각질과 갈라진 피부가 두드러지게 보이고 피부가 더 화끈거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심한 상태가 아니어도 코 주변을 휴지로 닦는 것만으로도 그 주변 화장이 이미 많이 지워지죠. 


그래서 평소에는 화장을 잘 하지 않습니다. 해도 코 주변은 거의 맨살로 남겨뒀지요. 딱 그 부분만 맨살로 남기는 것이 어색할까 봐 코와 인중은 맨살, 코 옆은 아주 조금만, 이런 식으로 그라데이션(?) 메이크업을 했습니다. 네, 쉽지 않고요. 그렇게 한다고 해도 원래 피부와 화장한 피부가 다르기 때문에 어색합니다. 그래서 무슨 날이 아니면 피부 화장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코를 조금 피해 하이라이터를 아주 약간, 블러셔를 조금, 좀 신경 쓰는 날이면 아이라인을 눈꼬리 끝에만 약간, 그리고 립을 조금 바를 뿐이었습니다. 


저도 제가 1월에 결혼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예식장을 정하기 전 기준을 세웠는데, 식사가 잘 나오는 곳, 대중교통이 편하고 자차로 오기에도 접근성이 좋은 곳, 주차 공간이 넉넉한 곳, 멀리서 올 때 부담되는 너무 늦은 예식이나 이른 예식 시간은 피하고, 다음 날 출근하는 부담이 있는 일요일도 가급적 피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기준을 세우고 보니 선택의 폭은 더 줄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 점심 무렵 예식은 인기가 좋아 이미 꽤 뒤까지 꽉 차 있었고 비는 날짜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저는 부모님께 여름에도 에어컨 시원하게 나오는 곳에서는 코가 막히지 않냐며 언제 하든 마찬가지일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큰소리는 쳤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됐습니다. 지금이라도 봄이나 가을로 다시 바꿔야 하나. 근데 봄은 봄 대로, 가을은 가을 대로 비염이 없진 않은데. 


메이크업숍에 가서 비염이 있으니 코 주변 메이크업에 좀 더 신경 써 달라고 했는데,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웨딩촬영은 가을에 했었는데, 코 주변 메이크업으로 크게 애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혼식 당일에도 그것에 대해서는 마음 편하게 먹기로 했습니다.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도 아니고. 이왕이면 예쁘게 나오는 게 좋겠지만, 내 결혼식인데 내가 비염 때문에 코 주변이 엉망이 된다고 해도 어쩌겠나 싶으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내 결혼식인데 내가 울고 싶을 때 좀 울면 어때, 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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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염으로 가장 괴로운 건 나인데, 그걸 자꾸 잊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걸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10월 9일은 쉬고 10월 23일에 다음편을 올리겠습니다. 이번 추석은 얼굴을 보는 만남 대신 조용히 푹 쉬고 재충전 하시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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