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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첩 Sep 03. 2021

고집이 아니라 장애




연필이가 어릴 때, 어떤 식품에 들어있던 방습제(실리카겔)를 좋아한 적이 있다. 연필이는 그 식품 포장을 뜯자마자 방습제를 꺼내서 네 귀퉁이를 반듯하게 펴 두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방습제가 좀 더 날씬한 모양으로 바뀌었다. 연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모양이 아닌 걸 보고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 식품을 새로 사달라고 했다. 부모님과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동안 마트나 슈퍼에 가면 그 제품보다 먼저 생산되었을 제품(방습제 모양이 바뀐 그 제품보다 더 먼저 날짜로 유통기한이 찍힌 것)을 찾으러 다닌 적이 있다. 물론 딱 한 번 찾아냈고 그 이후로는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날씬한 방습제가 든 새 제품이 계속 생산됐겠지.

연필이의 이런 행동을 사람들은 집착, 또는 고집이라고 불렀다. 어릴 적 연필이는 먹는 과일과 생선 종류가 정해져 있었다. 특정 브랜드의 특정 맛 감자칩을 먹었고, 집에서 화분 위치라도 바꾸면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옮겨 놨다. (지금도 겨울에 화분을 거실에 들여놓을 때면 부모님이 연필이에게 잘 설명해주면서 며칠 동안 서서히 들여놔야 한다)

우리 가족은 연필이의 그런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게 아니면 맞춰주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연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


본인은 물론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도 고집을 꺾어야 한다면서 도전정신을 불태우던 사람들이 있다. 어디에 놔도 크게 상관이 없는 물건을 굳이 발달장애인이 원하는 위치와 다른 위치에 두길 원하면서 긴 시간 싸우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고집을 꺾지 않으면 내보내 주지 않겠다는 건지 출입문 앞에 지키고 서 있던 사람도 있었다. 특정 음식을 안 먹을 뿐인데 그 음식을 굳이 먹어야 한다면서 억지로 입에 쑤셔 넣던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왜 굳이 자신의 에너지를 쓰면서까지 발달장애인의 위험하지 않은 장애 특성을 뜯어고치고 싶어 하는 걸까?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지만 그 이유가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아무도 걷지 못하는 신체 장애인에게 걸어야 한다며 억지로 떠밀지 않는다. 한 손이 불편한 신체 장애인에게 양 손을 써서 하라며 장애가 있는 손을 움켜쥐며 화내지 않는다. 그런데 왜 정신적 장애, 발달 장애인의 장애적 특성에 대해서는 못된 성격처럼 취급하며 고치겠다고 달려드는 걸까? 그런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애란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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