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도 안되었는데 또 이사를 하고 있다. 부모님 이름으로 된 최초의 우리 집. 눈에 보이는 모든 가구들이 새것이고, 아침이면 햇빛이 온 집 안을 비춘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빌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빚이다. 이 집에 오기 전 우리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몇 달 전, 지하 단칸방을 나와 오래된 2층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했다. 처음 생긴 개인 방은 작지만 옷장이 들어갈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옆집과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생긴 그늘 때문에 거실은 어두웠다. 밖에서 일을 하는 엄마 대신에 수경은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에게 가구 놓을 자리를 알려주는데 정신이 없었다. 낯선 여자가 문 앞에 서 있는 걸 발견한 건 티브이를 옮길 때쯤이었다.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기대하지 않은 대답이 들려왔다. “이 집, 잘 알아보고 온 거예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어깨가 5센티쯤 내려간 사람처럼 보였다. 아는 언니였던 부동산 업자가 소개한 이 집은 하루 차이로 중복 계약이 되어 있었다. 집주인은 2건의 전세금을 받아서 잠적했고 집은 경매에 넘어갔다. 평생 모은 전세금이 도장 한 번에 사라졌다. 어차피 다시 전세로 들어가도 빚을 질 상황에서, 그녀는 더 큰 빚을 지기로 했다. 자식들도 대학을 졸업했으니, 함께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무렵 아빠는 이 모든 불행이 엄마 때문이라며 검은 봉지에 담배 한 보루와 소주 한 병을 넣고 집을 나가겠노라 선포했다. 방바닥에 누워있던 수경은 어릴 적부터 흔하게 겪던 일이라 그를 향해 대답했다. “잘 가.”
집을 나갔던 그가 돌아왔을 때쯤 인맥 왕이었던 엄마는 새 집과 작은 가게를 마련했다. 모든 것이 빚이었다. 빚그레이드 된 집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가족들이 열심히 살게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없기 때문에 계단 오르기 운동은 기본이었다. 해가 잘 들어오니 빨리 일어날 수 있었다. 투덜대던 아빠도 이런 집에서는 화분을 키워야 한다며 베란다에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가족들의 적응력은 놀라웠다. 생각해 보면 이 강인함은 가난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처음 가족이 되었을 때는 훨씬 가난했다. 태어나자마자 달동네에 살았고, 온 동네 사람들이 공동 화장실을 이용했다. 엄마가 혼수로 장만해 왔다던 싸구려 옷장은 지붕이 낮아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누워있는 옷장 위에서 어린 남매는 숨바꼭질을 했다. 집들이 판자들로 나눠져 있어서 옆집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날이면 침을 흘렸다. 다른 집 아빠가 술을 마시고 자기 집인 줄 알고 들어올까 봐 꼭 문을 잠갔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가난의 시절에 비하면 빚으로 쌓아 올린 5층 집은 궁궐 같았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그들은 햇빛이 잘 드는 이 집을 지켜내겠노라 각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집과 가게가 온전히 가족의 것이 되었을 때, 그들은 울지 않았다. 돌아보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젊음과 맞바꾼 빚잔치. 당할 수밖에 없던 시련. 묵묵한 시간들. 그 속에서 그들은 가족이라기보다는 전우였다. 몇 년이 지나도록 네 가족은 빚 나는 집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내일의 햇살도 이 집으로 들어올 것이다. 오늘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