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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 소녀 하이디 Jul 14. 2019

그곳에 가면 프레디 머큐리가 있다.

제2의 고향 몽트뢰 (Montreux)를 그리며

프레디 머큐리가 퀸의 멤버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전해진다.

“If you want peace of mind, come to Montreux.”
"마음의 평화를 원하면, 이 곳 몽트뢰(Montreux)로 와".

복직을 앞두고 생각이 많은 요즈음 나의 마음에도 평화가 필요하고, 그래서 그의 말은 나에게도 와 닿는다.

"나도 몽트뢰에 가고 싶다."


아직 몽트뢰에는 프레디 머큐리가 있다. 그는 그가 평소에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자주 취했던 "다리를 벌리고 한쪽 손을 불끈 움켜 쥔" 포즈로 우뚝 서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이제 더 이상 무대 위를 달리지 못하고 우리는 그의 라이브 노래를 듣지 못한다. 그런 그를 안타까워하듯 몽트뢰의 거대한 호수 lac leman 레만 호는 잔잔히 출렁거린다. 퀸은 프레디 머큐리 사후 이곳에 위치한 마운튼 스튜디오 (Mountain Studio)에서 앨범 “Made in Heaven"을 발표한다. 그가 생전 녹음한 마지막 퀸의 앨범이다. 이 조용한 호숫가의 작은 도시를 그토록 사랑했던 프레디 머큐리에게 이곳은 남들에게 비해 그에게 빨리 찾아온 인생의 말년을 보낸, 그만의 천국 (Heaven)이었다.


내 하드 드라이브에서 우수수 쏟아져 나온 몽트뢰 (Montreux)의 풍경들; 도시, 호수, 산과 포도밭


스위스의 조그마한 소도시 몽트뢰는 내 인생의 빛나는 한 때를 함께한 나의 옛 "우리 동네"이기도 하다. 로잔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에게 몽트뢰는 주말에 잠깐씩 산책을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던, 다른 스위스의 소도시와 다를 것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이 곳에서, TV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한 부자(프레디 머큐리, 데이비드 보위 등)들이 집을 갖고 있고, 교과서에서 한 번쯤 보았을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와 영국의 저명한 시인 바이론(Byron) 이 글을 썼고, 차이코프스키가 음악을 만들며 그들의 삶 한 부분을 장식했다. 이러한 키 팩트(Key facts)들만 보자면 몽트뢰는 나와는 정말이지 거리가 먼 “있는”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러나 스위스에 직장을 구한 후, 뜻하지 않은 운으로 이곳에 작은 아파트를 구하게 되면서 나는 기대했다. 이제 나도 뭔가 “있는”인생을 시작하노라고.


집에서 걸어서 정말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위치한 호숫가를 거닐며 가족과 함께하는 동네 사람들의 심플한 주말을 구경했다. 부자들이 산다는 동네 답지 않게 쇼핑할 곳도 많지 않고 그나마 있는 작은 가게들은 토요일에는 오후 6시에 문을 닫고 일요일은 휴무이다. 이런 이유로 나의 주말은 서울에서와는 다르게 쇼핑이 아닌 호숫가에서 책 읽기나 동네 뒷산 포도밭 산책으로 채워졌다. 일요일 초저녁이면 산 중턱 포도밭 길을 거닐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붉은 노을과 덩달아 발갛게 변하는 호수. 이곳에서 내가 한국에서 느끼던 일요일 오후의 우울함은 없었다 (물론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았다. 유치한 표현이지만 나는 정말이지 그때 호수와 산과 하늘이 나와 함께 한다고 느꼈다.


우리 동네 산책길의 흔한 풍경 (출처: 내 오래된 하드 드라이브)


마냥 조용하기만 할 것 같은 몽트뢰는 여름과 겨울 많이 바빠졌다. 특히나 여름에는 이 도시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Montreux Jazz Festival)이 열린다. 한적하고 조용한 스위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영국 대표 락밴드 퀸 멤버들도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프레디 머큐리 생전 퀸은 1984년, 1986년 두 번 공연을 했고, 브라이언 메이는 그 이후로도 게스트로서 종종 이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몽트뢰에 남아있는 그룹 퀸의 흔적들 (출처: 내 오래된 하드 드라이브)


한국 대표 락커 배철수 아저씨도 이에 질세라 페스티벌을 방문하셨다. 라디오 진행자로서 말이다. 페스티벌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나는 한국 라디오에서나 들을 법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 보니 정말 그분! 내가 고등학교 때 늘 듣던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귓가에 맴돌던 그날 몽트뢰는 스위스 호수 자락 끝에 위치한 작은 동네가 아닌 내가 그분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던 고향집 내 방 안이되었다.


드문 일이지만 나는 가끔 호수 위에 피는 물안개를 본 적 있다. Deep Purple이 보았던 “Smoke on the Water”곡에서의 "smoke"는 아마 이 물안개였을까? (물론 아니다. 그들은 몽트뢰 카지노에 난 불로 인해 호수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의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water"는 Lac Leman 레만 호가 맞다.)


각국 대표 락커들이 즐겼던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과 레만 호 (lac leman) (출처: 나의 오래된 하드 드라이브)


프레디 머큐리에게 천국이었던 이곳은 나에게도 천국이다.


퀸도 딥 퍼플도 배철수 아저씨도 다녀간 이곳은 프렌치 리비에라 (French Riviera -  남프랑스 Côte d'Azur w지역, 우리가 잘 아는 니스, 칸느가 이 지역에 있다.) 만큼이나 아름다워 몽트뢰 리비에라 (Montreux Riviera. 실제로 이 도시는 Riviera-Pays-d'Enhaut라는 지역에 속한다. 높은 곳에 위치한 리비에라 - 알프스 산턱에 위치했으니 그렇게 불릴 만도 하다.)라고도 불리는 그곳. 그들이 거닐었던 산책길을 나도 걸었고, 그들이 보았던 호수를 나도 보았다. 우리는 동시대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들이 왜 이 도시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다. 이곳에 살면서 처음에는 몸을 배배 꼬며 지루해했지만 심플한 삶이 주는 넉넉함과 소소한 일상에 가끔씩 펼쳐지는 놀라운 이벤트들로 나의 마음은 부자가 되었다. 돈은 “없지만” 마음은 좀 “있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몽트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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