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 살 쌀통과 이별한다
그동안 여러 번 내치려 했으나
어머니께 받은 오직 하나의 선물이니
망설여져 오래 붙들고 살았는데
너무 늙어 누름판마저 파업한 네가
조그맣고 새까만 쌀벌레들을 키우겠다고 고집하니
어쩔 수 없구나, 도리가 없구나
오늘은 미련 없이 버려야겠다
신혼의 어느 봄날
암사동 열여섯 평 아파트
옥색 께끼 옷 곱게 차려입고 상경하신 어머님과
좁은 이마에 머리숱이 무성한
암사시장 만물가게 아저씨가
물 그림자 어른대듯
아지랑이 헤살 대듯
떠오르는 날
잘 가거라
오랜 세월 변함없이
무거운 우리 양식을 끌어안고
묵묵히 내 부엌 신이 되어
함께 살아온 쌀통아
이제 그만 떠나거라
미련 없이 훌훌 가거라
너를 녹여 어여쁘게 눈부시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