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이 될 수 있는 상대방에게는 결코 다정한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동물
나에게 특별히 다정하지 않게 구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함께 속해있는 집단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한 사람이려니 한다. 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주도권이란 집단에서 인정하는 공식적인 지위나 그 집단에 소속되어 있던 기간에 영향은 받겠지만 항상 비례해서 얻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존경받지 못하는 리더나 나잇값, 연차값을 못한다고 이름난 선배들을 만난 경험은 그런 측면에서 큰 공부가 되었다.
한 사람 몫을 넘어서 대체하기 힘든 자기 자리를 굳건히 잡았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의 자리나 안부를 살필 수 있는 깜냥이 생긴다. 그건 남들이 알기 전에 자기가 가장 먼저 알아채는 감각이지만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반드시 티가 나게 마련이므로 숨겨지지도 않는다.
내가 여기서 꼭 필요한 사람이고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는 자신감과 안정감이 없다면 집단 내 가장 작고 약한 사람에게조차 친절할 수 없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까닭은, 다정할 수 없없던 내 경험을 포함해 그 반대의 상황으로도, 관찰로도 여러 차례 학습한 바 있기 때문이다. 동물적인 설명을 덧붙이면, 다정함은 본능이 알아챈 우위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위협이 될 수 있는 상대방에게는 결코 다정한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동물이기에, 아주 작은 사회에서도 그러한 본능을 발휘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타인을 향한 다정함, 특히나 약자에 대한 다정함이 성격에 달렸다는 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여러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그 모든 태도의 공통점은 자기 존재감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이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만성적인 인정투쟁을 벌이는 사람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다정할 필요는 없지만 다정하지 않은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을 이제 많이 이해하게 되었기에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다르게 말하면 내게 다정하지 않은 사람의 행동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여태껏 자리를 잡지 못한 그 사람의 생존본능이 열심히 일하는 중이고 나를 견제해야 할 만큼 여기서 주도권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니까, 기꺼이 다정함을 베풀어주는 사람들의 친절을 감사하게 받으면 된다. 다만 상대방을 딱하게 여기고 그냥 허허 웃으며 넘기기에는 나도 아직 수련이 필요하기에 내게 최선의 수련법인 글을 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