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쟁이 Nov 15. 2023

목표는 시니어가 아니라 주니어가 되는 것

삶 전체를 통틀어 계속해서 주니어가 되기를 선택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2011년 11월 14일, 첫 직장에 첫 출근을 했다. 신입직원 교육을 같이 받는 열 명의 동기들이 한 공간에 모여 어색한 첫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여러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가 온 중고 신입 언니오빠들 사이에서 내  나이는 끝에서 두 번째였고 키는 가장 컸지만, 두드러지는 텐션 때문에 누구도 내가 막내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사회생활 경력이 12년 쌓인 지금 나는 네 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고, 누구에게나 '경험 많은 경력직 직원' 대우를 받고 있지만 그 사실이 무서우리만치 부담스러운 순간도 때때로 있다. 지나온 시간을 부끄럽게 만큼의 허와 실을 스스로 낱낱이 알고 있는 까닭이다.


한 가지를 지속한다는 것은, 한 직장이든, 직무든, 연구분야든, 아니면 한 가지 사업체 든 간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오고 가는 수많은 풍파를 겪고 또 이겨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무언가에 오랫동안 전념해 온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레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기면서 그 비결을 묻고 싶어 진다. 물론 재미를 최고의 동인삼아 살고 있는 나라고 해서 모든 것을 금세 그만두고 이리저리 옮겨다니기만 한 건 아니다. 십 년 넘게 지속해오고 있는 취미도 있고, 직전 직장에서의 경력도 누군가에게는 호기심과 존경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만큼의 시간이었지만 '오랜 시간'이란 상대적 개념이니까 언제나 궁금하다. 내가 겪은 상황을 비슷하게 겪고도 다르게 반응하고 다르게 선택했던 이들은 어떤 사람인지, 우리의 차이점은 어디에 있는지. 어느 편이 맞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삶에 대한 호기심이라 해야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분야에서 시니어이자 전문가의 지위를 쌓은 이들의 노력과 전문성을 너무나 가치 있게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부럽다든가 궁극의 지향점을 거기 두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분야에서의 경력이나 나이 때문에 더 이상 나를 주니어로 생각해주지 않는 것이 더 걱정스럽다.


분야를 막론하고 초심자(주니어)들은 좀 더 성장하고 숙련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쌓여 무언가에 숙달하고 나면 결국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시도해야만 성장할 수 있고, 그 새로운 분야에서는 누구나 주니어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치원 최고참이 초등학교 가면 햇병아리 취급을 받고, 성인대접을 받는 고등학생이 대학 가면 새내기로 다시 시작하듯이 그냥 나이만 먹어도 숱하게 주니어와 시니어를 오고 가야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성장하는 사람이란 삶 전체를 통틀어 계속해서 주니어가 되기를 선택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내가 잘 모르는, 어쩌면 내 지난 모든 시간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곳으로 발걸음을 떼는 것, 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하고 싶고,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 그 길을 기꺼이 택하는 사람이야말로 죽을 때까지 더 나아지는 사람이라고 믿기에, 나는 존경받는 전문가로 오래오래 남기보다는 계속해서 새로운 환경에 나를 던져 이리저리 부딪치고 헤매며 탐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이 둘은 완전히 상충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선택할 수 있는 삶!


모르는 분야로 옮겨온 지 약 백일 째,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지금의 나도 언젠가는 툭 치면 그럴듯한 소리를 줄줄 읊는 사람(내가 생각하는 전문가의 가장 단순한 정의)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거기 머물지 않고 또 새로운 것, 내가 모르지만 궁금한 분야로 가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니어의 자리에 서기를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하다 혹시라도 세상만사 모든 것에 통달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나는 어딘가에 있을 새로운 분야를 탐색하는 데 주니어가 되겠다. 살면서 가장 많이 주니어가 되고, 가장 나이가 많은 주니어의 기록을 경신하고 싶다. 계속 성장하는 한, 영원히 주니어인 사람도 없고, 영원히 시니어인 사람도 없음을 믿기에, 지금의 나와 이다음의 나를 포함하여 어딘가에서 새롭게 주니어의 경험을 쌓을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