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들 급여의 선 공제 항목으로, 이후에는 줄어들지 않는 퇴직금으로
십 년도 더 전에 함께 일했던 첫 직장 동료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직접 초대를 받지는 못했는데, 퇴사하고 나서도 동료들 경조마다 빼먹지 않고 얼굴 비추던 그가, 경조 연락 오고 간 지 오래된 옛 동료들에게 문득 자기 소식 전하기는 멋쩍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결혼식 며칠 전 핀잔주듯 내가 먼저 연락해 청첩을 받아냈다.
'결혼식 초대를 거절할 수 있는 꿀팁이 오고 가는 세상에 굳이?' 싶겠지만, 여기에는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큰 동기로 작용했다. 따로 약속 잡고 만날 사이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것도, 같이 모이는 그룹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지난 직장생활의 특정한 기간을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명절이나 연말연시에 안부인사를 건네기도 하지만, '한 번 만나요'라는 말에 담긴 진심도 바쁜 일상 속에 몇 번쯤 날아가면 더 이상은 만나자는 말 자체도 조심스러워지는 그런 관계들. 자연스럽게 만날 방법은 이제 경조사밖에는 딱히 없다. 결혼하는 동료에게는 미안하지만 축하하는 마음은 거들 뿐이었달까. 같은 서울인데 지하철만 한 시간 반을 타야 하는 멀고 먼 여행길을 거쳐 식장에 도착했다. 더 서두르지 못해 신랑 입장까지 마친 이후였지만, 반가운 얼굴들 몇몇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똑 부러짐과 되바라짐이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던 이십 대 후반의 나는 내 기억 속에 실제보다 훨씬 미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그때의 나를 처음 만나 미숙한 시절을 함께해 준 이들이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보고 싶어 해 주며, 오랜만에 만나도 그때와 다름없는 다정함을 보여준다는 것은 날이 갈수록 더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으면 무례하다고 부글부글했을 '네 결혼식은 언제쯤 갈 수 있냐'는 질문도 다정하게만 느껴져 '다음 생에요'라고 능청스럽게 웃어넘긴다.
십여 년도 더 전이긴 하지만, 급여는 지금의 반토막도 안되던 그 시절, 나는 회사에서 무한정 마실 수 있는 커피도 급여에 포함된 거라고 계산하곤 했다. 커피를 취급하는 회사였던 덕분에 다양한 원두와 질 좋은 샘플이 항상 구비되어 있었고, 특히 품질과 밀접한 일을 하던 나는 남들이 돈을 주고 배우는 커피 지식과 기술을 업무의 연장선에서 마음껏 익힐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업무의 특성이자 복지였기에, 선 공제된 셈인 그 비용을 급여로 환산할 때마다 마음이 꽤 넉넉해졌다. 실제로 그때 얻은 모든 지식과 기술 덕분에 지금까지도 커피를 좀 안다고, 많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 선 공제된 비용으로 생각했던 것은 바로 동료들과의 관계,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비영리 사회적 기업을 업으로 선택한 우리 모두는 평범의 범주에서는 살짝 벗어난 별종들이었지만, 함께 일하다 보면 재미있는 생각이 샘솟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어울릴 수 있는 것이 이곳에서 일하는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때부터 사회생활의 안녕을 측정하는 나만의 기준이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생활 내공이 쌓이면서, 언젠가부터 ‘급여는 꼴 보기 싫은 사람이랑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수당도 포함된다'는 생각으로 버티는 나를 발견했다. 첫 직장에서 좋은 동료들만으로 기뻐하던 내 모습과 비교하면 너무 속물처럼 변한 것이 아닐까 싶겠지만, 모르는 소리다. 노동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원리는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일하는 데 활력을 주는 동료들은 급여 외에 내가 받는, 그리고 중요도가 높다 생각하는 베네핏이므로, 직장을 옮길 때 이 정도 수준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그를 상쇄할 수 있을 만한 다른 가치가 있는지 따져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의 직장으로 이직한 직후로부터 이제껏 본 적 없는 유형의 사람들과 일하는 데 소모하는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상당하지만, 꽤나 높아진 급여 수준이 그를 감당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 어려움이 결국 악화를 계속하여, 내 연봉 상승분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면 내 선택은 ‘싫은 사람 감내 수당’이 좀 더 높은 직장을 찾거나 연봉은 좀 깎이더라도 그런 수당이 필요 없는 곳으로 이직하는 두 가지 중 하나가 되겠지. ’이 돈 받고 여기까지는 못하겠다' 싶으면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독성 관계에 대처하는 맷집이 강한 것이 또 경력직을 쓰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직장에 가면 천사 같은 동료들이 합리적인 행동을 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는, 수당을 받고 있다 생각하는 게 꽤 도움이 된다.
반대로 함께 일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료들도 있다. 같은 나이일 때의 나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유능하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몇몇 사람들에게서 나는 줄곧 배우고 가끔은 감탄하며, 일하며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는 건 분명히 선 공제하기에 마땅한 비용이라는 생각을 한다. 좋은 동료들과 일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실력이자 자산이 되고, 내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하며, 팍팍한 돈벌이 중의 위로가 될 때도 있으므로 돈을 내고라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그 편을 택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꽤 밸런스가 잘 맞는 직장을 다니나 싶기도 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커리어의 초기를 보내고 있는 동료들에게는 나와 함께 일하는 게 공제일지 수당일지. 당장은 모를 수도 있으나 십여 년쯤 지났을 때 더욱 분명해지는 그것은, 세월 지나 물어볼 수 있다면 사실 답을 들은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직장생활 동안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들 모두 지금은 소식도 모르고 연락처조차 없으니까. 동료에서 옛 동료가 된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전히 나를 아끼고 생각해 주는 이들을 가득 가지고 있는 나는, 현재의 내 동료들도 후에 나와 같은 자산을 가졌으면 한다. 내가 지금은 그들 급여의 선 공제 항목으로, 이후에는 줄어들지 않는 퇴직금으로서 그들이 가진 자산의 일부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