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
3권에 이르는 장편소설의 첫 번째 권은 그 다음의 이야기까지 독자를 끌어들여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 원래 작가가 세 권짜리로 의도했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소설의 앞부분은 늘 그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배경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앞으로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암시한다. 그런데 그게 매력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전 명작이라고 소문 난 작품이라고 해도 다를 바는 없다. 첫 번째 권이 도무지 따라가기 힘든 지경이라면 손을 놓아버릴 게 분명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첫 번째 권은 카라마조프 가(家)의 구성원들과 주변 인물들에 대해 소개하고, 그들 사이의, 그들과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자식들을 버릴 정도로 이기적이며 탐욕 가득한 호색한 오십 대의 지주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와 어머니가 죽은 후 버려지다시피 한 상태로 성장하여 20대가 되어 아버지를 찾아온 세 아들, 드미트리, 이반, 알렉세이가 주축을 이루고(그들은 배다른 형제다), 표도르의 사생아로 여겨지는 하인 스메르쟈코프(그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앓았던 질병인 간질을 앓고 있다)와 드미트리의 약혼녀인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아버지인 표도르와 장남인 드미트리가 결혼하고 싶은 안달하는 그루센카 알렉산드로브나가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막내 알렉세이가 수도사로 있는 수도원의 존경받는 장로 조시마, 알렉세이를 사랑하는 리자 등이 있다.
소설의 인물들은 평면적이 아니다. 인물 자체의 특징 자체가 선명하면서도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인간의 심성답게 시시각각 변한다. 어떤 경우에는 친절한 듯하다가도 불같이 화를 내면서 뒤돌아서기도 하며, 사랑을 갈구하다가도 간단히 내쳐버리기도 한다. 첫 번째 권은 바로 이런 인물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며 앞으로 이런 인물들이 서로 얽히며 빚어낼 사건들에 기대를 갖도록 한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그냥 이야기로서만이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철학이 짙게 배어 나온다. 그것들은 등장인물의 말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532쪽에서 548쪽에 이르도록 단 한 문단으로 구성된 이반의 종교에 대한 설파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의구심을 가지고 있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이에 관해 어떻게 대답을 할 건지를 추궁하고 있다(언뜻 읽어본 3권 뒷부분의 작품 해설에는 작가가 바로 이 부분이 이 작품의 ‘정점’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부분은 사실 소설에서 읽기에 쉽지만은 않다. 어떤 경우에는 조금은 어색하게 끼어드는 느낌도 들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깊이를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야기 자체는 어쩌면 콩가루 집안의 ‘막장’ 드라마 같지만, 바로 그런 삼류소설적 스토리 안에 깊이를 불어넣는 도스토예프시키가 대단한 것이다.
이제 이 가족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아볼 차례다.
* 정말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은 한 인물의 이름을 다양하게 부르고 있는 점이다. 정식 이름에 애칭, 비칭이 한두 개도 아니고 대여섯 개를 쓰고 있다(예를 들면, 알렉세이는 알료샤, 료샤, 알료세치카, 얄료센카, 알료쉬가 이렇게 다섯 개나 된다). 1권을 다 읽을 때쯤이 되어서야 대충 적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