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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Nov 22. 2024

새끼들의 신비로운 세계, 생물학의 문 앞에 서다

대나 스타프, 『어린 것들의 거대한 세계』

이런 책을 만나면 행복하고, 다 읽고 나면 뿌듯해진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나름대로의 유구한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끼지만, 이처럼 구체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찬 책을 읽으면 더더욱 그렇다. 


생명의 다양성을 많이 얘기하는데, 여기서 느끼고 배우고 확인하는 것은 그저 그렇다고 인식하는 관념적인 다양성이 아니다. 실제로 느끼고 인식하는 생명 발달의 다양성이다. 한 가지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한 가지 과정으로만 말할 수 없는,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형태와 과정을 통해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경이롭고, 어쩌면 찬란하다. 

어떤 경우에는 감동스럽고, 어떤 경우에는 감탄스럽다. 그리고 때론 안타깝다. 





해양생물을 통해 발달을 연구해온 저자가 ‘어린 것들’, 즉 ‘새끼’를 통해 그런 지구상 생명의 다양성과 신비를 보여주고자 한 것은 정말 신의 한수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흔히 다 자란 성체의 모습과 생리적 현상을 통해 그 생물을 이해하곤 하지만, 실제로 지구상에 대부분의 동물은 새끼들이다. 그 새끼들이 살아남아야 성체가 되고, 다음 세대의 새끼를 낳고, 끝없는 생명의 고리, 진화의 흐름을 이어갈 수가 있다. 새끼들이 어떻게 나오고, 그것들이 어떤 적응을 통해 살아남아 성체에 이르는지에 대한 탐구는 그야말로 생명을 이해하는 데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새끼가 성체에 이르는 과정도 간단하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학에서의 연구도 쉽지 않다. 과학자들은 그런 발생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별 짓을 다한다), 겨우겨우 한 가지 한 가지씩 이해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그 과정과 지금까지의 결과가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지게 된 경이로움과 배움은 갈피갈피마다 그어진 밑줄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한 것이고, 또한 의미심장한 것이라 부지런히 볼펜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다 기억할 수 없는 것에 내 능력을 탓하기도 하면서 정말 최소한으로 밑줄을 그었지만, 한 페이지에도 몇 군데씩 자국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아무데나 펴서 몇 가지만 인용해보면 이런 것들이다. 


“과학자들은 난자 안으로 다수의 정자를 허용하는 두 가지 예외 동물 그룹을 발견했다. 빗해파리류와 화살벌레 등 모악동물이다.” (50쪽)


“악어는 껍데기를 깨고 나올 때 어미가 관여하며 도와주거나 아예 이빨로 뜯기도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69쪽)


“2014년에 과학자들은 사상 최초로 세포기관을 인도하는 박테리아가 없으면 초기 세포 분할을 일관되게 완료할 수 없는 동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회충이고, 그 박테리아는 월바키아속에 해당한다. 만약 월바키아에 감염된 그 알을 항생제로 치료한다면 그중 약 절반이 죽어버린다.” (87쪽)


“젖은 동물 세계 전반에 다 펴져 있다. 비둘기, 펭귄, 플라밍고는 새끼에게 먹일 소낭유를 만들고, 깡충거미는 복부에서 나오는 젖을 분비하며, 바퀴벌레는 새끼들에게 고단백 젖을 먹인다.” (126쪽)


“원래 제왕나비는 포식자에게 맛이 없기로 악명 높은 곤충이다. 애벌레 시절에 독성이 있는 박주가리를 먹으면서 독성을 몸속에 쌓기 때문에 성충을 잡아먹으면 몹시 역겨운 맛이 나기 때문이다.” (201쪽)






현대의 생물학은 상당 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 수준에서 생명 현상을 탐구한다. 그래서 생물학이 ‘생물’을 연구한다기보다는 생물의 ‘분자’를 연구하고, 연구자는 평생 생명체를 직접 다루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간혹 과연 그게 생물학이 맞나 싶을 때도 있다. 생물학을 전공으로 삼고자 마음 먹었을 때는 생물에 대한 친근함, 혹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텐데, 이 책은 바로 그런 본래의 생물학의 감성을 되살려준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생물학을 하는 이들이 있음에 안도하게도 된다. 아직도 세상에는 알아야할 게 많다는 것도, 그것을 탐구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인지도 깨닫는다. 다시 생물학의 문 앞에 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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