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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책 읽기, 세상 읽기, 마음 읽기

이승우, 『고요한 읽기』

by ENA Mar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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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높여 외치는 글이 아니다. 이승우란 소설가의 인상, 그의 소설에서 느꼈던 그대로다. 그렇다면 제목대로 ‘고요’한 걸까? 이승우는 ‘고요’를 ‘몰두’라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맞다. 

 

읽고 떠오르는 생각, 또는 읽기 전에 떠오른 생각을 썼다. 글이 단정한 만큼 생각들도 단정하다. 극단에 다가가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바로 직전에 읽은 오후 작가의 『틀릴 결심』과 정반대의 글쓰기 같아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소설가 이승우의 단정한 글 역시 자신이 옳다는 것을 강변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생각하기를 즐기며, 형용 모순을 자주 쓰는 것은 세상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분명하지만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글에 관한 글이 많다. 소설가이니 당연하다. 글에 관해서, 글의 의미에 관해서, 글이 받아들여지는 방식에 관해서 여러 글이 있지만, 대체로는 글을 썼을 때 그 글의 의미가 독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처럼 여겨진다. 쓰는/말하는 사람과 읽는/듣는 사람이 서로 다름으로 생기는 여러 오해와, 혹은 창의적 발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쓰는/말하는 이의 글과 말이 전적으로 작가/화자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다. 쓰고 말한 다음의 일은 작가와 화자의 것이 아니다. 그 밖에도 글 쓰는 이의 자의식은 짙게, 자주 드러난다. 

 

믿음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이야기한다. 이런 문장들이다. 

“맹신은 믿음의 최상급이 아니라 믿음의 반대말이다.”

“광신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지나치게 종교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전혀 종교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을 두고 말했는지는 명시적이지 않다. 역시 읽는 내가, 우리가 해석할 따름이다. 

 

그런데 가장 덜컥거린 문장은 같은 것이다. 

“문장을 덧붙이고 덧대는 사람은 그 유일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자기가 쓴 문장에 의해 생길 수도 있는 오해와 왜곡을 우려한다. 이 사람은 염려가 많고 소심해서 상처를 받고 싶지도 않고 주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바꾼다. 바꾸고 추가한다. 그래도 흡족하지 않아 다시 덧댄다. 하나밖에 없는 그 표현을 찾지 못해서 바꾸기와 덧붙이기와 덧대기가 이어진다.” (238쪽)

군더더기 없는 문장, 나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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