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은퇴 후 세번째 해 (1)

본격 방랑, 어디로 갈지 정하는 것의 지겨움

by 퇴사자

드디어 코이카 봉사활동의 한 해가 지나고 떠나야할 때가 다가왔다.


사실 서울에서 사나 볼리비아에서 사나 매일 루틴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첫해에는 한국에서 뭐 배우러 다니고, 두번째 해에는 볼리비아에서 사무실 나가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다. 지인들도 어차피 일년에 몇번 안만나니 영상통화 하면 별 갈증 없이 소통이 되었다.


서울 살 때와 볼리비아 살 때의 차이점

바다 없는 나라라 신선한 해물이 없다

도서관에 안가고 한국드라마를 더 많이 본다

한인 가게 파는 김치가 노맛이라 김치를 담가 먹는다

놀러오겠다 한 사람들도 편도 30시간 넘는 비행에 막상 닥치면 시간과 돈에서 엄두를 못낸다


코이카 봉사활동이 생각보다 일정이 빡빡해서 주변국을 다녀올 시간이 활동 중에는 많지 않다. 귀로여행이 가능한데 한달 이내에 가야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지만 나는 퇴사시 받은 검진 쿠폰이 많아서 장기 여행을 하게 되었다.


꼭 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곳으로 간다는 것은

기한도 없고 사명도 없고 원하면 법적으로 허용된 어디든 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어디로 갈지 매번 정하는 것이 의외로 무척 골치가 아프다.


일단 현재 정치적으로 안전한지, 지진 등 자연재해가 없는지 검색하고, 해외에는 한 도시 내에서도 안전한 동네가 따로 있다. 하루를 지내더라도 어느 지역이 안전한지 체크를 매번 해야 하는데 상당히 귀찮다. 도시와 구역이 정해진 후에는 내 예산에 맞는 숙소를 검색하고 리뷰를 다 읽어야 한다.


브라질

브라질은 출장으로 상파울로와 리우를 방문했다. 나는 보사노바 음악을 십대때부터 좋아해서 브라질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갖고 있었다. 강렬한 색상을 사용하는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리우의 패션 유투버를 팔로우하고 있다. 브라질은 치안이 좋지 않고 호텔 조식 식당의 티비 뉴스에서도 온통 강도 이야기, 특히 출장 상대방이 강도 경험담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해줘서 더욱더 몸을 사리고, 목적지에 갈때마다 호텔 프론트에 가서 혼자 가도 되는 지역인지 택시타고 가야 하는지 등등 일일이 치안 상태에 대해 확인 후 이동했다.


이외에 볼리비아 국경과 가까운 편인 보니토에 개인휴가로 방문한 적이 있다. 시골이라 공기 좋고 평화롭고 아침에 사책하면 모든 집들이 앞마당을 열심히 청소하는 것도 좋아보였다. 자연에 방문하는 다양한 투어가 있고 은퇴 후 이곳에 와서 사는 분들도 보이고 작은 도시지만 짦은 기간이라면 이곳에서 은퇴후 시간을 잠시 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으로 방문해볼만한 곳이지만 내륙이라 강에 물고기 종류도 다양하지 않아 스노쿨링도 한시간 내내 하는 것이 지겹고 춥고 뭔가 흥미진진한 것을 원하는 사람들보다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잘맞는 곳 같다.


아르헨티나

코이카 봉사가 끝난 후 볼리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르헨티나로 가장 먼저 건너갔다. 남미의 파리라는 별명답게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올드리치 외에는 모두 가난한 쓰레기를 뒤지는 사람들이 흔한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육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정말 맛있는 소고기가 아니면 먹지 않는데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명성대로 수퍼에서 파는 고기조차 진짜 맛있었고 그릴에 구운 곱창도 맛있었다. 아르헨티나도 자국민이 다 먹어치우느라 수출할 양도 없을 뿐더러, 한국은 미국 눈치보느라 예전 광우병 이력을 핑계로 아르헨티나 소고기 수입을 금하고 있는데 한국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아르헨티나 소고기 수입이 열리길 바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밋업으로 만난 여성 모임은 마침 내가 간 날의 주제가 바차타여서 처음으로 바차타를 배우게 되었고, 이날 완전히 바차타에 빠져 후에 콜롬비아에 춤 배우러 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예상치 않은 만남이 새로운 관심사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대학도시인 코르도바를 거쳐 와인으로 유명한 멘도사로 가서 40일 정도 머물렀다. 코르도바는 물가도 싸고 젊은이들이 많아 디지털노매드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국인 노매드들도 많아 만나보고 남미 각지에서 머문 경험도 들었다.


멘도사는 살다살다 이렇게 건조한 습도 10-20% 정도 되는 도시는 처음 와 보았다. 그 동안 한국보다 더 습한 곳은 많이 가봤지만 이렇게 피부를 바짝바짝 말리는 곳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건조하니 과일이 수퍼 울트라 달콤해서 과일과 농산물이 다 아주 저렴하고 맛있었다. 숙소 뒷편은 가끔 여우도 나타났다.


수도에서는 혼란스러운 경제 사정이 너무 잘 보이는 반면, 연금 문제, 실업 등 문제는 모든 곳에서 당면하였겠지만, 지방 도시만의 여유가 느껴져 좋았고 남미가 전반적으로 그렇지만 특히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한국처럼 친구와 함께 보내기보다는 젊은이들도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아보였다. 연말에 불꽃축제한다길래 당연히 젊은 애들끼리 놀줄 알고 같이 와인테이스팅 투어에서 만난 친구에게 보러가자 했더니 가족이랑 파티한다고 나를 가족파티에 불러서 참석했다. 친구의 십대 여동생이 마침 한국어에 관심이 많아 한국어도 알려주고 나중에 한국 라면과 과자도 부에노스아이레스 한인수퍼에 요청해 택배를 보내주었다.


땅이 크다보니 멘도사의 맛있는 과일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포도 관련 가공제품도 많은데 한국인들이 좋아할 것이라 확신하는 매운 발사믹 소스는 내가 수입해 팔고 싶었다.


picante.JPG 멘도사 수퍼에서 파는 balsamico picante 매운 발사믹 소스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남극 근처는 추운 곳을 너무 싫어하는 나는 스킵했다. 남미의 스위스라는 바릴로체까지만 네우켄을 거쳐서 갔다. 바릴로체에 머무는 동안 여러 호수를 방문하는 원데이투어로 간 산마틴 데 로스안데스는 너무 아름다웠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있는 집들로 가득찬 내가 꿈꾸어오던 호수가 마을 그 자체였다.


남미는 멀어서 다시 가기가 두렵지만 이곳에 머문다면 기꺼이 먼길을 달려가고 싶다. 이미 사둔 비행기 표 때문에 원데이투어만 한 것이 너무너무 아쉬운 곳. 기회가 되면 장기로 거주해보고 싶다.


아르헨티나는 그동안 미국 달러 대비 상당히 저평가되어 달러를 들고 가면 공식 환율보다 두배 가까이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어 장기 여행자들이 많았다. 게다가 외국인들의 허락된 체류기간보다 오버스테이 후 출국할 때 다음 입국시 벌금을 내거나 바로 벌금을 내도 몇만원도 안되는 소액이 벌금이 부과되어 체류기간에 상관없이 불법체류를 아주 쉽게 하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그러다 내가 아르헨티나에 갈 즈음에 갑자기 새 대통령 밀레이가 강제로 아르헨티나 페소 평가절하를 해서 외국인으로서의 메리트가 사라지자 노매드들이 탈출을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관광지 물가는 북유럽보다 더 비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다시 볼리비아, 페루를 거쳐 바차타를 배우기 위해 콜롬비아 메데인으로 갔다. 라틴 댄스의 성지는 칼리인데 치안이 좋지 않다고 해서 메데인으로 정했다. 나는 살사에 관심이 없고 바차타에만 관심이 있는데 도착해서 보니 바차타의 성지는 도미니카공화국이었다. 그래도 살사와 바차타를 같이 가르치는 클래스가 다수 있다.


남미사람들은 다들 라틴댄스를 잘 출 것으로 생각하지만, 막상 와보면 한국인이 한국무용을 다 출줄 아는것은 아닌것처럼 그들도 댄스 스투디오 다니며 배운다. 물론 파티에 목숨 거는 그들이기에 파티에서 가족들에게 배워 조금씩은 출줄 알지만 다 기본 스텝도 엉성한 막춤이다. 춤을 제대로 배울 필욘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즐기면 충분하긴 하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땅고 tango는 누구나 조금씩은 출줄 알거라 기대했지만 만만의 콩떡이다. 특히 젊은 남성들은 완전 노관심이고 나이드신 분들은 조금 추고 젊은 여성들은 조금 관심 있어 보였는데 땅고 공연을 가도 나이드신 메인 댄서와 젊은 여성의 조합이 많다.


이십년 전 쿠바에 가기 전에 살사를 한달 배워서 갔는데 막상 쿠바의 클럽 가면 다 아프로 힙합을 춰서 당황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배워간 살사는 클럽이 아니라 우연히 방문한 한 가정에서 할머니와 손잡고 췄던 기억이 있다.

bedbug.JPG 혐주의. 베드버그 숙소 리뷰

메데인 숙소에서 일주일쯤 후 시트를 갈아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빈대가 나타나 생애 최초로 빈대에 물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겪은 최악의 가려움이었다. 노이로제에 걸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직접 청소도 하고 혹시 밝으면 빈대가 출몰안하지 않을까 해서 불켜놓고 자며 한달을 겨우 버텼다. 그런데 이후 멕시코에서 더 심한 고통을 준 샌드플라이를 만나게 된다...







keyword
이전 18화18. 은퇴 두번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