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돈 말고 의미 있는 일을 해볼까
오로지 돈 벌려고 회사 다니던 직장인이었던 나는 퇴사 후 돈이 목적이 아닌 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었다. 그러면 돈 때매 일하는 불쌍한 직장인 A가 아닌 가치있는 인생을 사는 그 누군가가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나는 일회용품도 안 쓰려고 노력하고 플라스틱 봉지도 안쓰려고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모르는 나라 사람들까지 돕겠다고 30시간 이상 비행기를 세번 타고 힘들게 가는데 뭔가 내 인생에 큰 반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떠났다.
코이카 자문단 활동
나는 볼리비아의 한 경영대학원에 소속되어 기업들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마케팅 컨설팅을 하고 종종 학생들 대상으로 디지털마케팅에 대한 세미나도 개최했다.
한인들이 많지는 않았는데 내가 스페인어를 거의 못하다보니 한인들 중 농업과 광업 관련 업무를 하시는 분들께 물어보며 신세도 많이 졌다.
개인적 주말 봉사
근무시간이 주중에 제한되니 이왕 멀리 나온거 주말 시간도 지역사회랑 친해지고 봉사도 하자 싶어서 교인은 아니지만 집 근처 교회를 찾아가 돕고 싶다고 했다. 남미의 최빈국이라 해서 첨엔 불우한 이웃이 많을 줄 알고 부모가 없는 조손부모 가정에 청소나 집안일을 도와야 하나 했으나 대도시의 안전한 동네에 그런 가정은 거의 없어 한국어 영어 수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자원봉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점은 노동을 한 후 보람이든 인정이든 어던 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생들 나이가 5살부터 15세 정도까지 다양해 수학은 레벨이 많이 차이나는데 아무리 교과서를 가져오라고 요청해도 단 한명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리고 영어와 한국어도 공짜다보니 나오다 말다 들락날락해서 진도를 나가기가 무척 어려웠다.
오랫동안 시장에서 내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 상도 받으며 일했는데, 은퇴 후 나의 자원봉사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공짜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런 것이 되어 있었다. 이럴 바에야 스트레스를 좀 받더라도 돈 받고 일하는게 나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일이 끝난 저녁에도 주말에도 일 걱정을 놓지 못하는 과거로 아직은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언어가 안 통하는 곳에서의 생활, 의외로 쉬웠다
나는 스페인어를 과거 쿠바 여행 가기전 학원 한달 다닌게 다였고, 자문관 선발 과정에서는 스페인어 능통자 우대였지만 나는 영어만 하는 상태로 선발되었다.
경영대학원인데 설마 교수나 학생들이 영어를 하겠지 라며 볼리비아의 사무소장 조차 믿었지만, 현실은 대학교에서도 학장 부학장 정도만 영어를 하고 일반 교수들도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학생이 2% 정도가 영어를 이해한다고 해서 세미나나 회의에서 통역이 필요했다. 교수도 자식들은 다 미국에 보내놓고서도 본인은 기본적 영어 회화조차 하지 않았다. 실제로 해외에 나가서 스페인어 문화권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큰 불편이 없다보니 그런 것 같다.
나로서도 향후 남미 거주나 취업을 고려하지 않아서 스페인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스페인어 그룹 수업 같이 들으며 친구 만들어 놀러 다니려고 그룹 클래스를 찾았는데, 팬데믹 직후라 다 없어져 찾을 수가 없었다. 이왕 남미에 있으니 일대일 레슨도 받았지만 재미가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엄청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1 uno, 2 dos, 3 tres 정도만 해도 장보고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조금 놀랍기도 했다. 교민들을 보며 불편한 이역만리에 와서 왜 언어도 안되는데 살고 있나 의아하기도 했는데, 내가 1년을 지내보니 이렇게 한해한해 보내다보면 금방 10년 되고 30년 되나보다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duolingo라는 앱이 있어 게임하듯이 공부할 수 있어 무료 버전으로 조금씩 익혔다. 이후 봉사활동을 끝낸 후 중남미 여행을 다니면서 오히려 생존 스페인어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