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황혼무렵 시 한잔11-선데이 서울과 까치의 야구

엄지를 향한 까치의 공처럼 던져보고 또 던지기

by 스포쟁이 뚱냥조커



.






과거는 지나갔기에 흔히 미화되기 쉽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아름다웠다 말하기 어려운 엄혹한 시절도 있다 한국은 아마도





역사에서 격동의 시기가 다 그렇듯이 한국의 80년대를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할 것이다. 전두환 군부정권과 민주화운동을 주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군부정권이 민간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3S 정책 즉 sports sex screen 문화를 유신시절에 비해 대대적으로 풀어준 문화 자율화의 시절로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대기업 재벌들이 출자해서 지역연고로 시작한 야구는 순식간에 국민 스포츠가 되었고 박철순 선동열같은 스타는 한국야구의 전설로 지금도 회자된다. 그리고 시에 나오는 아버지도 박철순의 투구를 워낙 인상깊게 보았는지 마치 야구선수를 코스프레하듯 집에서 접시를 커브로 던져댄다. 나보다 먼저 접시타고 담을 넘었던 형은 이미 82년에 한번 나갔다 돌아왔고 시의 화자는 조용히 구석에서 선데이서울을 보며 숨을 죽인다





지금 기준으로는 별 특별한 자극 없는 수영복 차림의 여성이나 여배우 화보에 불과하지만 이제 막 유신의 검열에서 벗어난 시절이란 걸 생각하면 수많은 소년과 남정네들을 가슴부풀게 했으리라. 그리고 이런 선데이서울 화보나 프로 스포츠만큼 남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던 문화는 아마 만화영화 티비와 극장 애니메이션이 아닐까.


만화가 그저 몰래 어두컴컴하고 담배연기 자욱한 지하 만화방에서 봐야하는, 사회악 불쏘시개 검열의 주 대상으로 취급당하던 세상에서 컬러티비로 매주 일정한 시간에 이현세 화백의 캐릭터들이 목소리를 내며 살아 움직인다는 건 그 자체로 감동이었으리라






공교롭게도 전국적인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던 87년에 최초의 한국에서 만든 장편 애니메이션 떠돌이 까치도 방영되었다. 시인 말처럼 돌멩이가 전국에서 날아다니고 일상이 워낙 극적이기에 선데이가 따로 없었던 시절이 아닐까.


그리고 80년대가 끝나자 아버지와 박철순의 전성기도 지나간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선데이 서울도 폐간한다


그리고 떠나간 여자에게 건넨 내 꽃은 조화였다


가짜라서 내 사랑은 시들지 않았다고 시인은 말하지만 애초에 활짝 필 수가 없는 꽃도 사랑일까


어릴 적부터 엄지의 사랑을 받을 수만 있다면


난 너를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까치의 야구는


지옥의 훈련으로 공포의 외인구단을 결성해서라도 우승하고 말겠다는 진짜 프로의 마인드일까


아니면 그저 어린 소년처럼 여전히 너무나 좋아하지만 말하지 못해서 그저 공을 던지는 걸까


떠돌이 까치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나도 그 공을 받아 까치처럼 영혼까지 담아서 전력투구하는 날은 오려나... 아니면 가야 하나


조화를 건네놓고 시들지 않는 꽃이라고 변명하는 날이 아니라... 어깨가 부서질 때까지 그녀가 안아주는 서로 껴안아주는 달콤한 꿈...


황혼 무렵에 시 한잔...



Fin.


다음은 권혁웅 마지막 시를 읽는 스파이더맨...

keyword